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전경. /SK이노베이션
국내 정유사들이 종합화학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국제 유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석유사업 대신 안정적 운용이 가능한 고부가 화학사업 등에 주력해 내실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유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비석유 사업의 비중이 늘고 있다. 3분기 SK이노베이션은 매출 5조2118억원, 영업이익 9636억원을 기록했다. 전사에서 2015년 57%, 2016년 50%를 차지하던 석유사업 영업이익은 올해 들어 1분기 45%(4539억원), 2분기 2.9%(125억원), 3분기 53%(5264억원)로 비중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조3891억원인데, 전통적인 석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8%에 불과했다.
석유사업은 국제유가에 따라 실적 변동이 크다. 올해만 하더라도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석유사업 영업이익은 125억원에 불과했다. 1분기와 3분기 영업이익의 5% 수준이다. 2014년 국제유가가 급락했을 때는 국내 정유사 대부분이 적자를 내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정유기업들이 선택한 것이 고부가 화학물질사업이다. 원유를 국내에 들여와 휘발유·경유·등유 등 석유제품만 추출하는데서 그 외의 화학물질까지 생산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원유 1t을 가열하면 끓는점에 따라 등유와 휘발유가 추출된다. 이 과정에서 나프타 약 0.18t이 분리되는데 기존의 정유사들은 나프타를 석유화학기업에 판매해왔다. 이를 정유사가 직접 열분해하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화학제품을 추출할 수 있고 재가공을 통해 다양한 고부가 화학물질도 만들어진다.
화학제품들은 국제유가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사업 영위가 가능하기에 정유업체들도 화학설비 구축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을 화학·윤활유 자회사를 둔 사업지주회사가 된 이후 사업구조와 수익구조 혁신에 힘써왔다. 6조원 넘는 금액을 투자해 파라자일렌 설비를 갖추고 중국에 중한석화를 세웠으며 울산 아로마틱스, 넥슬렌, 스페인 ILBOC 등 다양한 고부가 화학 사업을 추진했다. 올해는 다우케미컬의 고부가 화학사업(EAA)과 폴리염화비닐리덴(PDVC) 사업도 인수했다.
3분기 석유사업의 영업이익 비중을 60%로 줄인 에쓰오일도 전사적 총력을 기울여 석유화학을 강화 중이다. 에쓰오일은 내년 4월 완공을 목표로 울산공장에 '잔사유 고도화(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ODC) 콤플렉스를 건설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에쓰오일 자본금 5조3899억원의 88%에 달하는 4조8000억원이 투입됐다. 성패에 회사의 사활이 걸려있는 셈이다.
RUC는 원유에서 가스, 휘발유 등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인 '잔사유(殘渣油)'에서 프로필렌과 휘발유를 추출하는 시설이다. 에쓰오일은 RUC에서 하루 7만6000배럴의 잔사유를 프로필렌과 휘발유 등으로 전환 생산할 계획이다.
RUC에서 생산된 프로필렌은 ODC에서 석유화학 원료로 쓰일 예정이다. ODC에서는 프로필렌으로 연산 40만5000t의 폴리프로필렌(PP)과 연산 30만t의 프로필렌옥사이드(PO)를 생산하게 된다. 폴리프로필렌은 자동차 범퍼 등 산업용 플라스틱과 식품용기 생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일종이며 프로필렌옥사이드는 자동차 내장재와 전자제품 소재 등으로 두루 쓰이는 폴리우레탄의 원료다.
현대오일뱅크는 국내외 다른 기업과 합작을 통해 현대케미칼, 현대코스모 등 화학자회사를 육성 중이다. 2012년 설립한 현대코스모는 파라자일렌을 생산하며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과 합작해 혼합자일렌 등을 생산하는 현대케미칼을 설립했다. 올해는 OCI와 합작한 현대OCI를 통해 카본블랙 생산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코스모와 현대케미칼이 올해 3분기까지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2941억원에 달한다. 윤활기유 자회사인 현대쉘베이스 오일 역시 3분기 328억원을 벌었다. 전체 생산능력의 52%를 차지하는 주력공장이 정기보수에 돌입한 현대오일뱅크에게 이러한 자회사들의 성과는 반가운 소식이다.
GS칼텍스 역시 1990년 제1파라자일렌(PX) 공장과 제1벤젠·톨루엔·자일렌(BTX) 공장을 세운 이후 석유화학 분야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GS칼텍스는 연간 총 280만t의 방향족 생산 능력을 갖췄고 올해 초에는 멕시코에 복합수지공장도 조성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사업으로 수익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한 정유사들의 노력들이 최근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