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서 외국인발 '12월 충격설'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외국인의 주식시장 매수 강도가 뚜렷하게 약화된 데 이어 채권시장에서도 매도물량을 쏟아내면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외국인이 가진 원화채 가운데 12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이 3조9000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다. 이 물량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빠져나갈 경우 국내 금융시장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다.
각국의 부채가 늘며 나타난 글로벌 신용경색 현상으로 외국인이 채권을 팔고 달러를 들고 나갈 경우 국내 금융회사의 달러 조달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외국인이 한국시장에서 봇따리를 쌀 경우 채권값이 폭락(채권금리 급등)해 시중금리가 크게 오르기 때문에 잇따른 부동산 규제 정책과 14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에 따른 대출금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계와 중소기업은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
◆ 12월 충격설의 실체는?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국인 보유 채권액은 3조9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3분기까지 분기 말 평균 만기도래 규모는 약 2조3000원이었다. 만기가 몰리는 계절적 특성을 감안해도 12월 만기도래액은 이례적으로 많다.
그간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참석 위원들은 '가까운 시점'에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미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개편(감세)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투자가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 회의에서 Fed가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0.25%포인트 올린 1.25∼1.5%로 조정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11월 기준금리 인상카드를 만지작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에 대한 우리도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들의 잇따른 도산은 신용경색과 자산가격 추락으로 이어져 글로벌 신용경색 위험도 높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가계부채가 역대 최고치(3분기 12조9500억 달러)를 경신한 가운데 일부 자동차 대출의 연체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해 저신용자의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최근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만기도래한 자금을 롤오버(만기연장)하지 않고 국내 채권시장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이 떨어져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된다.
이번에 만기 도래하는 물량 가운데 상당액은 글로벌 채권시장 '큰 손'인 프랭클린 템플턴 펀드 등 단기 차익일 노린 운용사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시장에서는 외국인이 발을 빼는 모습이 관찰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3259억원어치 원화 채권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4조4501억원어치 채권을 순매수한 것과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 금리 충격보다 경제에 영향 받아
또 다른 걱정은 한미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이 발을 뺄 명분이 된다.
실제 한미 양국 간 기준금리 역전은 두 차례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6월~2001년 3월, 그리고 신용카드 사태 직후였던 2005년 8월~2007년 8월에는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았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99년 일시적인 자본 유출은 금리 역전보다는 당시 대우그룹 워크아웃을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2005년에는 미국 금리 인상이 이뤄지기 전부터 꾸준히 외국인 포트폴리오 조정이 이뤄진 결과 금리 역전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통화신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990년 이후 1997~1999년, 2008~2009년, 2015~2016년에 걸쳐 세 차례 대규모 자본 유출기를 경험했다.
한은은 "대규모 자본 유출에는 금리 차보다는 국제 금융시장 불안의 전이, 국내 경제의 취약 요인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10월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는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현 1.0~1.25%)를 올리면 상단이 한은 기준금리(연 1.25%)보다 높아질 수 있다"며 "자본유출입은 내외금리 차만 갖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급격한 자본유출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채권시장은 여전히 투자 매력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떠나지 않고 재투자할 전망이어서 '12월 대란설'은 우려에 그칠 것이란 진단이다.
NH투자증권 박종연 연구원은 "올해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가 4조원을 웃돈적이 있지만 이는 연초와 7월 유입된 대규모 재정거래 자금이었다"며 "12월에 재정거래 자금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워 12월에는 외국인의 원화채 순매수·매도 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