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이면 산타클로스가 기다려지는 건 꿈 많은 어린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개미(개인투자자)들에게도 산타는 반가운 존재다. 연말이 다가오면 유독 주가가 강세를 보인다는 이른바 '산타랠리'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2월 평균상승률은 19.62%에 달했다. 17년 동안 10번 상승했다.
그러나 증시에서 과거 데이터는 숫자일 뿐이다.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데다 요즘처럼 대내외 변수가 많으면 산타랠리를 점치기란 더더욱 어렵다. 산타랠리란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연말과 신년 초에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당장 29일 새벽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의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급도 우려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제롬 파월 의장 지명자는 28일(현지시간) "이제는 기준금리를 정상화할 시기"라며 "12월 금리 인상 여건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30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이탈의 빌미다.
그렇다고 해서 산타랠리의 꿈을 완전히 접기에는 이른 판단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국경제의 체력이 탄탄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2%(0.6%포인트↑)로 수정 전망한 이유다.
◆ "산타랠리가 기대된다?"
올해 산타랠리 여부는 미국 등 선진국 경기 전망 개선 흐름이 지속할 지 여부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달려 있다. 또 한반도의 긴장감은 증시를 짓누리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체력만 놓고 보면 나쁠게 없다.
경상수지가 2012년 이후 67개월 연속 흑자이고, 외환보유액이 올해 10월 말 기준 3845억달러로 늘어났으며, 2014년 9월 순대외금융자산국으로 전환하는 등 대외건전성 부분이 개선됐다.
환율 하락 유인인 외국인 투자도 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지난 10월 국내 상장주식 약 2조4190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3개월 만에 순매수로 돌아섰다. 덕분에 외국인의 주식 보유잔고는 651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국인은 우리나라를 가장 안전한 투자처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지난 10년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게 상승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Aa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AA', 피치 'AA-' 등이다. 무디스와 S&P는 상위 3번째, 피치는 4번째 등급이다.
내년 경기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산타랠리를 기대하는 한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OECD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상향 조정했다.
OECD는 "반도체 등 주력 업종에서 (다른 업종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이는 수출 회복세와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의 성과 등은 지속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라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비용 증가나 법인세 인상 등에 따른 투자 둔화, 지정학적 긴장 등은 성장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한금융투자의 곽현수 투자전략팀장은 "내년 상반기는 대외 경기 개선세 지속과 높아진 기업 이익 등으로 '편안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0대 증권사가 예상하는 2018년 코스피 상단은 2800∼3100포인트다.
전통적인 '연말 수혜주'는 IT 업종과 소비 업종이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12월부터는 실적 시즌에 진입하는 점을 감안해 지수와 업종은 이제 '기대'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밸류에이션, 실적, 금리, 배당 측면을 고려할 때 코스피 대형주 중심의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반도체 중심의 정보기술(IT)과 정유 중심의 소재 업종을 실적,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배당 측면에서 유망업종으로 꼽았다.
◆'3고(高)'압박, 돌 다리도 두드려라
금리와 원화 강세, 유가 상승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은 산타랠리의 복병으로 꼽힌다.
당장 금리인상 시대의 종말이 예고됐다.
금리가 오른다면 한국경제에 큰 부담이다.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부채비중이 높은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로 구조조정 파도가 한꺼번에 몰아칠 위험이 있어서다.
14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는 시한폭탄과 같다. 언제 터질지 몰라서다.
글로벌 자금의 급격한 이탈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05년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자 그해 7월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조원 가량 순매수하던 외국인은 금리 역전을 기점으로 8월부터 5조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이어 2006년 10조원, 2007년엔 24조원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었다.
원화 강세도 한국경제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경제가 일본처럼 '원화의 저주'에 걸릴 수도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원화의 저주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한 '안전통화의 저주'에서 나온 말이다. 통화가치가 경제 여건과 따로 놀면 그만큼 부작용이 심각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경제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1990년대 접어들며 장기 경기 침체를 겪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환율이 하락해도 수출 가격을 그만큼 인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율의 수출 가격 전가율이 -0.19로, 환율이 10% 하락할 때 수출 가격은 1.9%밖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추정했다.
KTB투자증권 김한진 연구원은 "유가 강세도 속도와 수급 왜곡의 우려가 있지만 경기 확장기에 나타나는 긍정적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며 "다만 유가가 너무 가파르게 더 오른다면 12월 증시의 기술적 조정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