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삼성
재계 맏형인 삼성이 마음 놓고 생일파티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12월 1일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 30주년이다. 하지만 공식행사나 내부 기념식도 없이 조용히 지나갈 예정이다. 삼성은 내년 3월 22일 창립 80주년도 맞는다. 고(故)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3월 1일 삼성상회를 창업했고 창립 50주년이던 1988년 이 회장이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며 22일로 창립기념일을 변경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연이은 악재로 이런 기념일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인 이 회장은 2014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아직도 병상에 있기 때문. 이 회장은 신체적인 건강을 회복했지만 의식은 명확히 돌아오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12년 이 회장 취임 25주년과 상반된 분위기다. 이 회장은 1998년 창립 50주년을 맞을 당시 '21세기 세계 초일류기업'을 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회장의 비전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선언을 하며 구체화됐다. 그는 삼성이 해외에서 2류에 머물고 있다는 메시지를 핵심 경영진에게 던진 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라고 채찍질하며 혁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후 1994년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500억원 상당의 불량 무선전화기를 쌓고 불태우며 제품의 질 향상을 강조했고, 이 회장의 진두지휘 덕에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 창립 25주년을 맞아 삼성그룹은 '그날의 약속을 돌아보다'라는 시리즈물을 게재하며 삼성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적극 알렸다.
삼성의 성장은 지속되고 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00조원을 넘어섰고 1조원이던 시가총액은 460조원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1위 기업으로 20년 동안 자리를 지키던 인텔마저 밀어내고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가 됐다.
그럼에도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어느 때보다 차갑기만 하다. 이 회장의 공석을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채우고 있었지만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리며 최 부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 부회장도 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항소심은 내년 1월에나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
삼성 계열사들을 진두지휘하던 미래전략실도 해체돼 삼성 계열사들은 각자도생의 상황에 처했다. 전자 계열사들은 사업지원TF가 구성되며 가까스로 인사와 조직개편에 나서는 등 정상화 행보를 걷기 시작했지만, 비 전자 계열사들은 아직도 임원인사 등 연말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회장님 취임 30주년 기념식도 창립 80주년 기념식도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전자 계열사는 그나마 수습이 되고 있지만 비 전자 계열사들은 아직도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를 대변하듯 지난 11월 17일 고 이병철 창업주의 30주기 추도식이 열렸지만, 30주기라는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소 규모로 치러졌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 복원된 삼성그룹의 모태 삼성상회와 과거 제일모직 터에 복원된 제일모직 기념관도 개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은 9000억원을 투자해 옛 제일모직 부지에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개관한 바 있다. 국내 벤처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였다지만 탄핵된 전 정권과 만든 결과물이기에 현 정권 눈치를 보느라 개관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이는 20년 전인 10주기 추도식에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재계 인사들과 외교 사절단이 방문하고 추모음악회와 전시회, 세미나 등 다양한 기념행사까지 열렸던 것과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대한민국 산업 역사에 획을 그은 기업"이라며 "과(過)는 따지되 공(功)도 인정해줘야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데 사회 분위기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