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 규모만 600조원 이상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불리우는 '국민연금'이 올해로 30돌을 맞이했다. 지난 1988년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정식 출범한 이후 불과 30년 만에 급속도로 몸집을 키운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만 현재 2000만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국민연금이 최근 들어 그 기능과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로 가입자 수 감소가 예상되면서 보험료 납입액도 줄고 이에 따라 국민들이 받을 수 있는 연금액도 적어지는 등 향후 연금을 받더라도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오는 2060년 재원소진 전망을 내놓는 등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도 위협받고 있다. 메트로신문이 지난 30년간 국민연금의 발자취를 살피고 향후 나아갈 길을 짚어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의 가입자 수는 지난 8월 기준 현재 2156만명에 이른다. 매월 연금 수급자 수도 434만명에 달한다. 지난 1988년 말 제도 도입 당시 가입자 수 443만명에 이듬해 1798명에 불과하던 수급자 수와 비교하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국민연금의 기금 적립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도입 초기 5300억원에 그쳤던 기금 규모는 지난 2003년 100조원을 넘어섰으며 이후 2010년 324조원, 2015년 512조원 등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8월 기준 현재는 602조7000억원으로 규모 면에서 일본 공적연금(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GPF) 등과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수익률도 기대 이상이다. 지난 1988년부터 쌓아온 600조원이 넘는 적립금 중 보험료 등을 뺀 수익금은 지난 8월까지 288조5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적립금의 47.8%가 수익금으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연평균 수익률은 5.85%로 안정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이에 따른 연기금 적립금은 오는 2022년 1000조원을 돌파하고 2043년 2561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4일 "국민연금은 도입 초기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에서 1995년 농어촌지역 주민, 1999년 도시지역 주민 등으로 적용대상의 폭을 넓히면서 말 그대로 '국민의' 연금으로 거듭났다"며 "기금 역시 국내채권 투자 중심에서 주식과 대체투자, 해외투자 등으로 투자 다변화를 통해 수익률을 높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금액 600조원 이상…3대 연기금 '자부심'
국민연금 경영공시 투자포트폴리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국민연금 적립기금 602조7000억원 가운데 국내주식은 124조원, 해외주식은 101조원으로 주식투자가 225조원(37%), 채권이 312조원(52%), 대체투자가 64조원(11%) 등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식투자와 해외투자 비중이 초기 대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 2000년 당시 주식투자 규모는 약 3조원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4.8%에 불과했다. 다만 5년 뒤인 2005년 이는 약 20조원으로 늘었고 지난 8월 말 현재는 225조원에 달했다.
대체투자의 경우 국민연금은 지난 2002년 벤처투자를 시작으로 부동산 및 사회간접자본(SOC), 사모펀드 등으로 진행해 왔다. 해외투자 역시 지난 2001년 첫 개시 후 이듬해인 2002년 해외주식 위탁운용, 2005년 해외사모펀드 및 인프라, 2006년 해외부동산 투자 등으로 지속적인 확대를 이뤄왔다. 이에 따른 지난 2016년 기준 해외주식 부문 수익률은 10.13%, 해외 대체투자 부문 수익률은 12.34%를 달성하는 등 기금 전체 수익률 향상을 이끌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꾸준한 수익률 관리로 국내 연금 최고액 수령자의 경우 매월 200만원 가량의 연금을 지급받고 있다"며 "연기연금 신청 이후 연기 기간 물가변동률 및 연 7.2% 정도의 연기 가산율을 적용받을 경우 애초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은 연금을 수령할 수 있으니 여유가 있는 수급자라면 연금 신청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용돈연금' 비판도…"국민 노후 위협"
국민연금은 이처럼 국민 노후자금의 최후 보루로서 지난 30년간 양적 성장을 이끌어 왔으나 최근 들어 당초 기대보다 적은 연금 수령액 등으로 인해 일각에서 '용돈연금'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연금 사각지대도 여전해 실질적으로 연금혜택을 보지 못하거나 못할 우려가 큰 국민들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오는 2060년 연기금이 바닥을 들어낼 것이란 전문가들의 연구도 국민들로부터 '내 돈 떼어먹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커진 외형만큼 국민들의 신뢰를 이끌지 못한 점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전북 전주 공단 본부에서 열린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김성주 이사장은 시장과 국민의 이 같은 불신에 "국민이 주인인 국민의 연금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공단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연금다운 연금'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금운용체계개편을 통해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 전문성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이 같은 발언에 시장 관계자들은 "상황 인식이 안일하다"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을 보이는 우리나라로선 현재의 국민연금 가입제도만으로 노후 빈곤의 수렁 탈출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 5월 기준 실직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한다고 신청한 납부예외자만 400만명 가량에 장기체납자는 무려 100만명에 달한다"며 "현행 국민연금법은 최소 120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만 수급연령이 됐을 때 노령연금을 탈 수 있고 납무 예외나 장기체납 등으로 최소 가입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그간 낸 보험료에다 약간의 이자를 덧붙여 일시금으로 받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의)연금지급률을 현재 70%에서 오는 2028년 40%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기대수명은 늘고 있어 국민들의 노후가 위협받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