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에 기술탈취 여부를 확인해 줄 곳은 없습니다. 기술탈취는 수사당국이 밝혀줘야합니다. 유일한 방법이 민사소송이지만 기술탈취는 절도나 상해처럼 형사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사기관이 기술탈취 사건을 담당하도록 해야합니다."(중소기업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청원 내용)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거래 또는 하청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가는 '기술탈취' 문제에 대해 정부와 피해 중소기업들이 팔을 단단히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본부에 기술탈취 문제를 전담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키로 했고, 홍종학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기술탈취 문제를 취임 후 제일 먼저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기술유용 등 대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 집권기 동안 강력히 추진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기술탈취를 당한 중소기업들은 첫 타깃으로 현대자동차를 지목했다.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기자실.
현대차로부터 기술탈취를 당했다며 2명의 중소기업 대표가 방문, 요목조목 내용을 설명했다.
자체 개발한 특허기술인 미생물을 활용해 2004년부터 현대차의 공장 설비에서 발생하는 독성유기화합물을 처리하는 업무를 해 온 비제이씨(BJC)의 최용설 대표(사진).
최 대표는 "11년간 정상적인 계약관계를 유지해왔던 현대차가 8차례에 걸쳐 기술자료를 요구한 동시에 미생물 3종이 담긴 6병을 훔쳐서 산학협력 계약을 체결한 경북대에 보냈고, 결국 경북대는 탈취한 내용으로 유사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탈취한 기술은 또 현대차 담당직원이 자신의 경북대 석사논문에 활용했고, (기술은)현대차와 경북대 공동특허 등에도 동일하게 사용됐다"고 호소했다.
2015년 4월 당시 현대차로부터 계약해지(미생물제)를 당한 BJC는 이후 매출만 22억원이 줄었고, 올해 6월엔 나머지 화학제품 계약까지 해지를 당해 지금은 매출이 전무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특허무효 심판 소송을 제기한 BJC는 특허심판원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중기부 산하 '중소기업 기술분쟁 조정·조정위원회'도 현대차가 BJC에 3억원을 배상해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현대차는 특허심판원 결정엔 재심을, 그리고 배상 결정엔 지급을 거부한 상태다.
2010년 3월 당시 현대차가 프레스설비 부품 개발을 요청, 이듬해 5월 관련 부품 개발을 끝낸 오엔씨엔지니어링의 박재국 대표. 박 대표는 이후 현대차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개발된 제품 2세트를 무료로 공급했다. 그런데 이후 현대차는 박 대표가 개발한 제품과 같은 제품을 다른 제조사로부터 납품받아 울산공장에 설치했다. 박 대표는 "2014년엔 우리가 개발한 로봇 설비 관련 기술 및 제품도 외국 기업 SKF에 유출해 SKF가 현대차에 같은 제품을 납품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우리 회사는 결국 파산에 직면하면서 해외 판로까지 막혀버렸다"고 전했다.
거대기업 현대차와 거래하던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기술탈취'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전날 "앞으론 본부에 기술탈취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기술자문위원회도 구축해 조사와 제재에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기술 탈취 문제와 관련해 "현행 제도론 기술탈취로 얻은 이익에 반해 처벌 가능성과 손해배상액이 적어 실효성이 미약하고 중소기업도 거래단절을 우려해 신고에 소극적"이라며 "공정위, 특허청 등과 협력해 기술탈취 시 강력한 처벌과 신속한 구제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중소기업 대표가 청와대에 지난 27일 제기한 국민청원엔 현재 3000명 이상이 '공감'을 표시했다.
한편 현대차는 이들 기업의 주장에 대해 "BJC의 기존 특허는 공동특허였기 때문에 기술자료를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5개월에 걸쳐 8차례 자료를 요구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미생물을 훔쳤다는 주장도 물건이 납품되면서 해당 제품 검수를 위한 샘플을 제공받은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오엔씨엔지니어링이 제기한 기술탈취 의혹에 대해선 "오엔씨의 제품 설명회는 관련부서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이뤄졌을 뿐 해당 제품을 구매할 것이란 어떠한 기대를 주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구매 프로세스상 미등록 업체인 오엔씨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도 없고, 이미 SKF사와 협의가 지속되고 있어 오엔씨의 제품설명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