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박모 씨(34)는 한 달에 약 350만 원을 번다. 서울에 20평 대 아파트 전세에 살지만 은행 빚이 대부분이다. 노후 준비도 연금 외에는 딱히 없다. 그는 2015년 통계청 자료 기준(4인 가구 월 소득 194만∼580만 원)으로 '중산층'이다. 하지만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생각한다. 박 씨는 "때 되면 집걱정. 한 살 난 딸아이에게 들어가는 분유값 등을 생각하면 신세가 초라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중산층 10명 중 약 6명은 박 씨처럼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노후준비도 부실해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산층의 61.7%가 은퇴 후 소득이 150만원이 안될 것으로 보여서다.
심지어 고소득층 10명중 2명도 자신을 빈곤층으로 여겼다.
7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2018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 가운데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44.1%에 그쳤다.
나머지 55.7%는 빈곤층으로, 0.2%는 고소득층으로 인식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6∼10일 112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중산층은 순자산 1억9900만 원을 보유하고 월평균 365만 원을 벌었다.
중산층은 평균 4650만원의 부채를 가지고 있으며, 지난해 4460만원보다는 약 200만원 가량 늘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노후는 어떨까?
중산층이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예상 월 소득이 얼마냐'는 질문에 중산층 61.7%가 "150만 원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현재 2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277만원이다. 월 소득이 139만 원 이하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중산층 스스로도 51.2%가 "향후 자신이 은퇴할 경우 빈곤층이 될 것이다"고 답했다.
중산층이 노후에 쓰기 위해 모은 자금은 평균 2900만원에 불과했다. 은퇴 후 30~40년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목돈이 없다면 기본적인 연금설계라도 잘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응답자 10명중 6명(60.2%)은 3층연금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월평균 예상수령액도 87만원에 불과해 기본적인 노후생활비 마련이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에 대한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낸 돈만큼 받을 수 없을 것 같다'(39.7%)는 것이다.
그렇다고 2층과 3층연금이 튼튼한 것도 아니다. 2층 퇴직연금의 경우 개인적으로 추가납입하고 있는 중산층은 겨우 3.7%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66.2%는 퇴직 시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겠다고 응답해 퇴직연금을 노후용도로 활용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
3층 개인연금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가입률은 46.6%로 3층 연금 가운데 가장 낮고, 평균 적립금은 1893만원에 불과했다. 적립금이 작은 것도 문제지만 적립금의 대부분이 은행이나 보험과 같은 안전형 상품(84.9%)에 들어가 있어 자산의 성장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NH투자증권 연금영업본부 유승희 본부장은 "목돈 마련,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어느 것 하나 노후준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중산층의 노후가 사면초가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실제로 중산층의 노후준비지수(필요 노후자금 대비 준비할 수 있는 노후자금의 비율)는 겨우 54점에 불과해 필요 노후자금의 겨우 절반 수준 정도만을 모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