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는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부터)김문식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 신정기 중기중앙회 노동인력특위위원장, 박성택 중기중앙회장, 한무경 여성경제인협회장, 이흥우 중기중앙회 부회장./중기중앙회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중소기업 현장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다.
근로자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 52시간 근로'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연간 평균 근로시간을 2016년 기준 2052시간에서 2022년에는 1890시간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과감히 줄여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도록 하겠다는 의지에서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 영세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문제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쉬는 시간을 늘리겠다는 '선진국형 정책'엔 당연히 동의하지만 인력 수급에 애로가 클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아 새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쉽사리 찬성만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인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박성택 중기중앙회장, 한무경 여성경제인협회장, 민남규 자랑스러운중소기업인협의회장, 김문식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 등이 근로시간 단축 입법에 대한 중소기업계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중소기업에는 현재도 26만개의 빈 일자리가 있고, 근로시간까지 단축할 경우 총 44만명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여야 간사가 합의한 대로 근로시간 단축법안이 시행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은 거래처 납기를 맞추지 못해 경쟁력을 잃거나 초과근무가 불가피해 범법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앞서 정치권은 근로시간 단축 관련 법안을 놓고 3당 간사간 합의를 했지만 처리에 실패해 지난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11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예정된 올해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재논의에 들어갈 전망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소기업계가 대국민 호소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나선 것이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계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장시간 근로문화를 바꿔야한다는 취지에 공감해왔고, 국회에서 조속히 입법이 마무리돼 기업 현장의 혼란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하지만 근로자의 40%에 이르는 30인 미만 영세 중소기업은 사람이 부족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 근로할 수 밖에 없어 이들 기업에 대해선 실태를 충분히 점검하고 추가 인력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왼쪽)이 12일 국회를 방문,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에게 '근로시간 단축 호소문'을 전달하고 있다./중기중앙회
특히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고 하더라도 30인 미만 중소기업에는 노사가 합의할 경우 추가로 주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할증률은 현행대로 50%를 유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중기중앙회가 별도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 현장에서 생산량 유지를 위해선 총 12조3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고 이 가운데 70%인 8조6000억원 가량을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안산에서 도금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납품단가는 매년 20% 줄고 있는데 휴일 할증을 지금의 50%에서 100%로 늘리면 적자가 불가피하다"면서 "원청기업의 납품시기를 맞추려면 연장근로가 필수인데 내국인은 일할 사람도 없다"고 토로했다.
올해 6470원이던 최저임금이 내년에 7530원으로 오르는 등 향후 예고된 '최저임금 1만원'도 고민이다.
한 가구업체 대표는 "업계 전체적으로 인력은 구하기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외국 노동자를 주로 쓰는데 최저임금 제도를 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외국인 상당수는 받은 돈을 본국으로 모두 송금하기 때문에 내수활성화와도 거리가 먼데 이들에게도 높은 최저임금을 똑같이 줘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한편, 중소기업계는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 곧바로 박성택 회장이 대표로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근로시간 단축 문제 논의에 들어갔다. 이어 노사정위원회와 노동계 등에도 호소문을 전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