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7 영화계] 유일한 천만영화, 예상밖 복병에 탄력
2017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도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무장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남을 가졌다.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부터 범죄액션까지 골고루 사랑받았다. 특히 올 한해는 역사적인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들이 대거 개봉해 묵직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가 하면 현실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한해동안 영화계를 관통한 키워드들을 통해 되짚어보자.
택시운전사, 박열, 아이 캔 스피크/네이버 영화
◆감추지 않고 마주한 '역사'
올해 유일한 천만영화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도와 광주에서 서울을 왕복한 택시운전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 바라본 그날의 광주와, 한 도시의 실상을 마주하고난 뒤 변화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고스란히 옮겨담아 수많은 관객들을 동요케 하며 올해 유일한 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택시운전사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는 '택시운전사'로 제38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사도' '동주'로 탁월한 시대극 연출을 선보인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통해 대한민국 청춘에게 뜨거운 투쟁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다. 일본 정부가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흔들리는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하는 비극적인 시대적 배경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극 자체는 무겁지 않다. 당당하고 괴짜스럽기까지 한 박열과 후미코의 예측불가한 행동(실화)에 관객은 집중했고, 영화관을 나올 때는 그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뜨거운 투쟁에 감명받은 채 퇴장했다.
그리고 또 한 작품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가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지난 2007년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구청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머니 옥분(나문희)과 민재(이제훈)의 특급케미가 빛났던 작품이다. 주인공 나문희는 이 작품으로 배우 인생 56년만에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첫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제1회 더서울어워즈, 제38회 청룡영화상,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17회 디렉터스컷 시상식, 2017 여성영화인상 대상까지 7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점에서 빛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기대작은 저조한데…뜻밖의 '흥행'
'킹스맨:골든서클' '남한산성'과 함께 추석 연휴에 개봉한 '범죄도시'(감독 강윤성). 신인 감독과 마동석·윤계상 주연의 조합에 기대를 거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쫄깃한 스릴감과 타격감이 전해지는 폭발적인 액션신에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2004년 하얼빈에서 넘어와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변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 강력반 괴물형사들의 조폭 소탕작전 실화를 배경으로 한 '범죄도시'는 통쾌한 권선징악 스토리로 관객을 사로잡아 687만9825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흥행 순위 3위를 기록했다.
반면,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와 '리얼'(감독 이사랑)은 각기 다른 이유로 관객에게서 외면당했다.
'군함도'는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220억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은 흠잡을데 없었지만, 개봉 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어 빈축을 샀을 뿐 아니라 수차례 해명했음에도 재차 역사 왜곡 문제가 제기돼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는 65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중국 알리바바픽쳐스로부터 115억을 투자받은 김수현 주연의 '리얼'은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한줄평을 남긴 채 관객에게 외면받았다.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연기력을 뽐낸 김수현의 노력과 성실함은 감독의 역량 부족에 의해 쓸려내려갔다. 작품그도 그럴 게 '리얼'이 후반 작업에 한창일 당시 이정섭 감독에서 김수현의 이종사촌 형인 이사랑 감독으로 교체됐고, 영화적 지식이 부족했던 이사랑 감독의 연출과 편집은 '최악'이라는 평가만 남겼다.
◆칸 홀린 '스타일리쉬한 액션'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와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은 나란히 제 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외신의 호평세례를 받았으며 국내 영화계의 위상을 드높였다.
사실 국내 개봉 후 서사 구조가 약하다는 이유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두 작품이 해외에서 박수 갈채를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스타일리쉬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내며 기존에 없던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것.
먼저 '악녀'는 김옥빈이 원톱 주연으로 나선 강렬한 액션 영화다. 살인병기로 길러진 한 여자가 진실과 마주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스토리는 다소 진부하다. 하지만, 액션스쿨 출신 정병길 감독의 연출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세련된 카메라 워킹, 주인공 시점에서 펼쳐지는 1인칭 액션신은 관객을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그리고 또 다른 작품 '불한당' 역시 기존의 느와르와는 다른 비주얼로 완성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스토리는 범죄액션드라마의 결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범죄액션물과 다른 만화적 구성과 함께 화려한 색감에서 오는 비주얼 효과에는 호평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