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조치 2년만에 수정…제계 "정부정책 믿을 수 있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하도록 명령한 근거인 가이드라인이 일부가 오류가 있었다며 변경하자 재계 안팎에서는 공정위 불신론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법 집행 신뢰성을 비롯해 원칙, 예측 가능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성 측이 공정위 결정에 불복하게 된다면 법적 분쟁도 예상된다.
공정위는 지난 20일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최근 법원에서 기존 가이드라인 작성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는 판결이 있었고, 나아가 국회에서는 기존 가이드라인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국정감사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그룹은 늦어도 내년 9월까지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를 매각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당시 삼성의 매각 주식 수와 관련해 실무진의 의견인 904만주가 마지막 순간에 500만주로 바뀌게 됐다"며 "다시 검토해 본 결과 2년 전 실무진이 결론을 내렸던 그 안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혐의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지만 삼성이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해 접촉해 공정위의 실무안이 변경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법원이 일부 판단을 달리한다 해도 공정위의 오늘 결정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6개월 유예기간을 부여한 것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은 상장회사로 소액투자자 등 수 많은 이해 관계자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는 것이 시장의 충격을 줄이는 방향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공정위 변경된 예규가 최종 확정되면 법률을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날 지난 2015년 가이드라인의 합병 후 순환출자에 대한 여러 쟁점 가운데 '고리 내 소멸법인 + 고리 밖 존속법인'에 대한 판단이 당시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당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사례를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순환출자 '형성'이라고 정정했다.
공정위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 내에 있지 않았던 존속법인은 소멸법인과의 합병을 통해 비로소 순환출자 고리 내로 편입됐기 때문에 합병 결과 나타난 고리는 새롭게 형성된 순환출자 고리로 봐야 한다고 봤다.
지난 2015년에는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하는 다른 사례와 '경제적 실질'이 같다는 근거를 댔지만, 이번에는 이 근거가 법 해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판단 아래 입장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 업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이미 내려진 처분을 번복함에 따라 법 집행의 예측가능성, 신뢰성을 훼손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은 "해석 기준의 변경은 소급과는 관계가 없다"며 "이는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시 법률 해석이 잘못됐다면 바로 잡아 정당한 처분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라며 "순환출자 규제 법률은 합병 당시와 변동이 없으므로 해석은 소급효과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