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를 견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저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수입량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중동 두바이유는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배럴당 61.28달러에서 62.37달러로 1.09달러 올랐다. 1달러 상승이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1달러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GDP)이 0.15%P 하락하고 국민총소득(GNI)은 0.60%P 떨어진다.
국제유가 인상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인 칼리드 알 팔리가 맡고 있다. 칼리드 알 팔리 의장은 OPEC 회원국은 물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비OPEC 산유국 관료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등 감산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 한 바 있다. 감산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 줄어든 석유 수출 물량을 이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결국 OPEC과 비OPEC 산유국들은 지난달 제173차 정기총회에서 기존 감산 기간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고, 50달러대에 머물던 국제유가는 거듭 상승해 60달러를 넘어섰다.
기본적으로 중동 산유국들은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한다. 때문에 국제유가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 석유 외에는 마땅한 수입원이 없기에 저유가가 장기간 유지되면 국고가 바닥나고 국내 경기가 망가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유가로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재정이 고갈돼 국제채권시장에서도 자금을 조달하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유가를 단기간 내 끌어올려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왕위 계승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빠른 시일 내에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1)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을 전망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원활한 왕위 계승을 위해 반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내세워 다른 왕자들을 체포하고 다른 왕자들과 밀접한 정부 관료들을 숙청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민심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강력한 개혁을 추진 중이다. 지난 9월에는 "사우디는 지난 30여 년간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며 극단주의 타파와 온건 이슬람 국가로의 회귀도 천명했다.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개발을 추진하는 신도시 '네옴(Neom)'의 위치. /구글맵
그는 포스트 오일 시대를 열기 위해 사우디 서부 사막지대에 신도시 '네옴(Neom)'도 조성한다. 이를 통해 다른 산업을 민영화하고 육성해 국가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사회·문화적 개혁의 첨병 역할도 맡을 예정이다. 서울 44배 규모인 2만6500㎢ 면적으로 조성되는 네옴을 위해 빈 살만 왕세자는 5000억 달러(약 557조45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역설적이게도 네옴 건설에 필요한 투자금은 석유에서 나온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내년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사우디 증시와 해외 증시에 동반 상장하고 지분의 5%를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원유 매장량과 국제유가에 달려있다. 국제유가가 80달러대였던 2010년 기준, 4조 달러에 달하던 아람코의 기업가치 추산치는 현재 1조5000억 달러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국제유가를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에서 아람코를 상장해야 네옴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
관련업계는 국제유가가 70달러를 넘어야 빈 살만 왕세자의 성공적인 왕위계승과 사회 개혁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아람코의 IPO가 성공해야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빈 살만 왕세자는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증권업계 전문가는 "빈살만 왕세자의 왕권 안정과 개혁 시도 성공 여부는 국제유가에 달려있다"며 "국제유가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 회장과 영국 재무차관을 역임한 짐 오닐 맨체스터대 명예교수는 국제유가가 내년에 배럴당 80달러선으로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