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우리동네 제설함, 잘 있나요?
"아 몰랐어요. 이게 제설함이었구나"
"제설함이 어디에 비치되어 있는냐"는 질문에 되돌아 온 답은 "모른다"였다. 김모(22)씨는 제설함을 보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제설함도 처음보지만, 쓰레기 모아두는 곳에 같이 있어서 열어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언덕길에 위치한 주택가는 제설차가 다닐 수 없다. 이에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제설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제설함을 설치해 두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제설함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랐다.
언덕길 위 주택가가 있다. 제설함이 필요한 장소다./ 사진 나유리기자
폭설 등 유사시 운전자나 보행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된 제설함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설 도구 없이 제설제(염화칼슘)만 비치돼 있는가 하면 일부 제설함은 제설제조차 없어 관리 소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 _서울시겨울안전대책: 우리동네에 위치한 제설함 위치를 알 수 있다.
26일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설함 위치를 찾아가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무작위로 종로구 종로1가, 중구 서소문동, 중구 을지로1가, 용산구 청파동1가를 선택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본 제설함 개수는 용산구 청파동1가 27곳, 종로구 종로1가 2곳, 중구 서소문동 12곳, 중구 을지로1 5곳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가보니 청파동1은 3곳, 종로1가 2곳, 서소문동 7곳, 을지로1가 3곳에 제설함이 제 자리에 비치되어 있지 않거나 없었다. 임의로 조사한 제설함 46곳 중 15곳이 정확하지 않은 장소에 표기되어 있었다.
"쓸모가 없어서 그냥 손으로 뿌려요"
제설함에는 제설용 삽과 같은 기본적인 도구마저 제대로 구비되지 않아 염화칼슘을 맨손으로 뿌려야 할 상황이었다.
용산구 주민 박씨는 "삽이 부러져있어서 사용할 수가 없어요. 미끄러질까봐 급한 대로 손으로 뿌려요"라며 제설함을 한참 들여다보다 말했다.
제설함 속에 제설용품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제설함에는 염화칼슘과 모래와 이를 뿌릴 수 있는 삽이나 바가지 등이 들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파동1가에 위치한 제설함에는 염화칼슘을 다 쓰고 남은 포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부서진 삽이 제설함 안에 그대로 비치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제설함 속 염화칼슘포대와 부러진 삽이 놓여있다./사진 나유리기자
제설함 주변에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사진 나유리기자
제설함 속 염화칼슘이 터져나와있다. /사진 나유리기자
용산구 관계자는 "수시로 순찰하며 제설제를 보충하고 있다"며 "삽 같은 제설 도구를 구비해 놓더라도 눈 오는 다음날이면 누군가가 가져가고 없어 관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소문구 관계자는 제설제 부족 등 관리소홀에 대해서는 "눈이 온 다음 날부터 민원이 접수된 제설함부터 순차적으로 채워넣고 있는데 제설제 납품이 지연되고 있어 채워넣지 못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제설함은 눈이 내린 후가 아니라, 내리기전 관리해야 할 물품이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