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당시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이 토론·국무회의 등 공식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2월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 조치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개성공단 철수 방침이 결정됐다고 밝힌 바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김종수 위원장(가톨릭대 교수) 등 9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혁신위)는 28일 지난 9월 20일부터 3개월여간 대북정책 추진 과정을 점검한 후 마련한 '정책혁신 의견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혁신위는 "지난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지난해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이전인 2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혁신위가 당시 통일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지난해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열린 NSC 회의에서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이 결정되지 않았으며, 다음 날인 8일 오전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은 김규현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통해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철수 구두 지시를 받았다. 이후 8일 오후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세부계획이 마련됐으며 10일 개성공단 철수 발표가 이뤄졌다는 것이 혁신위의 설명이다.
또한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갑작스러운 운영 중단은 피해가 크다.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청와대의 '대통령의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에 거부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혁신위는 "2월 10일 NSC 상임위원회는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주요 근거였던 '개성공단 임금의 핵 개발 전용' 문구도 객관성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당시 참고한 정보기관 문건에도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혁신위는 "충분한 근거 없이 청와대의 의견으로 삽입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은 정부 성명에서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됐다"며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통일부는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에도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 연관성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통일부가 2월 9일 최초 작성한 성명 초안에도 임금 전용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앞서 홍 장관은 당시 한 방송에서도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됐다"고 말했고, 국회에서는 '증거자료를 갖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2월 9일 자금 전용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2월 10일 NSC 상임위원회 회의 이후 정부 성명문을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하는 과정에서 최종 포함됐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혁신위는 헌법상 긴급처분이나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협력사업 취소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이를 통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는 행정행위가 아닌 이른바 통치행위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남북관계도 법치의 예외가 될 수 없고, 법을 뛰어넘는 통치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혁신위는 북한의 천안함 피격에 따른 지난 2010년 '5·24조치'도 통치행위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혁신위는 "통일정책은 정치적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법률에 근거해 일관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일부 내의 법무담당관실 설치, 통일정책 법제화 태스크포스(TF) 및 범부처 실무위원회 구성 등을 통한 통일정책 법제화를 건의했다.
또한 혁신위는 남북관계 악화로 손해를 입은 경협 사업자에 대한 손실보상 법률 마련과 경협 및 교역 보험제도 개선 등을 통해 대북사업의 안정성·신뢰성 확보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