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이사회 탈퇴 의사를 밝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1년이 다 되도록 이사회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 사용자 대표로 참여했던 전경련은 지난해 초 조직 와해 위기에 처하며 보건복지부에 이사회 탈퇴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 재단 자금 모집책 역할을 하는 등 관여한 여파였다.
당초 전경련은 사용자 대표 자격으로 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 참여했다. 이승철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가 국민연금공단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설립한 미르재단에 전경련이 기업들의 출연금을 모금한 사실이 밝혀져 전경련은 지난해 2월 국민연금공단에 비상임이사직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이 부회장의 비상임이사 임기도 그해 1월 22일 만료된 상태였다.
그로부터 1년이 다 돼 가지만 국민연금공단 이사회 비상임이사 자리에는 여전히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이 앉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11월 7일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면서도 비상임이사 명단에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포함시켰다. 사의를 표명하고도 10개월 넘게 자리를 지킨 셈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회는 이사장과 상임이사 3명(기획이사·연금이사·기금이사), 비상임이사 7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에는 사용자 대표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경련, 노동자 대표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지역가입자 대표로 한국소비자연맹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참여했다.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이 당연직 비상임이사로 추가된다.
국민연금공단 이사회는 ▲예산과 결산 ▲정관 변경 ▲중요 재산 취득·관리·처분 ▲사업 운영 계획 또는 공단 운영 방침 ▲신고권장소득월액 산정 기준과 방법 등 국민연금공단의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이 이사회의 비상임이사는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복지부 장관이 임명한다.
당시 전경련의 요청에 따라 복지부는 다른 사용자 대표단체를 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었다.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이 후보로 물망에 거론됐다.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사회 명단. 비상임이사에 이승철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이 포함됐다. /국민연금공단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은 "이 전 부회장의 임기가 지난해 1월 만료된 것은 맞다"면서도 "현재도 비상임이사로 있으며 활동은 하지 않는 상태"라고 해명했다. 이어 "공운법에 따르면 본인이 사의를 표명하더라도 후임자가 없을 경우 임기가 계속 연장된다. 후임자를 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8조 5항은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임자가 없으면 전임자가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2월 이승철 전 부회장이 사의를 표명할 당시도 그의 임기는 자동 연장된 상태였다.
국민연금공단의 해명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남는다.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는 이 전 부회장의 직책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지난해 2월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사임했고 권태신 상근부회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지난해 11월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한 만큼 사용자 단체 대표로 전경련이 남는다면 권태신 부회장으로 변경됐어야 한다. 필요에 의해 이승철 전 부회장을 유지시킨다면 전경련에서 물러난 만큼 '전 부회장'이라는 설명을 더해야 했다.
600조원대 국민 노후자금을 운영하는 기관이지만 관리에 허점이 생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측은 "홈페이지를 업데이트 하겠다"고 짧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