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10면 국제유가 추이와 싱가포르 정제마진(2단)
지난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정유업계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국제유가에 긴장하고 있다.
10일 국제유가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중동 두바이유 등 3대 유종 가격이 모두 뛰어올랐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WTI는 전일 대비 배럴당 1.23% 오른 62.96달러를 기록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1.04% 상승한 68.82달러에 마감됐다. 국내 수입 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0.72% 상승해 65.81달러를 기록했다.
당초 업계는 국제유가가 60달러에서 고점을 찍은 뒤 다시 하락해 연말까지 50~60달러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60달러를 훌쩍 뛰어넘자 7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국제유가 변동에 정유업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이 정유업계 이익을 줄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
통상 점진적인 유가 인상은 정유사 수익에 긍정적인 요소다. 중동에서 원유를 구입하더라도 한국으로 이송하고 정제 과정을 거친 뒤 일선 주유소에 전달되기까지 4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구입 시기와 도입 시기 사이 시세 차이가 발생한다. 가령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일 때 원유를 사들이면 한국에 들여올 때는 배럴당 55달러의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이를 재고평가이익이라 부른다.
그러나 현재 정유사들의 수익은 감소세에 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등유·나프타 등으로 만들었을 때 생기는 수익을 정제마진이라 부른다. 재고평가이익이 정유사 수익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정제마진은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데 최근 정제마진이 눈에 띄는 하락을 보였다.
치솟는 국제유가와 달리 정제마진은 지속 하락했다. 아시아로 수입되는 원유가 거래되는 싱가포르 시장의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매달 첫 주 기준 배럴당 9.9달러에서 7.3달러, 7.4달러, 7달러, 6.4달러로 하락했다. 증권가에서는 정제마진 1달러가 떨어질 때 정유사의 분기당 영업이익 2000억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대비 올해 1분기에 각 사별 영업이익이 2000억원 가량 줄어든 셈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4~5달러 사이로 알려졌다. 아직 적자를 걱정해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정제마진이 추가로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제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석유제품 수출 규제를 완화한 영향 탓이다. 중국발 공급증가가 현실화될 경우 정제마진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미국 정유사들의 공장 가동 확대도 정제마진 축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정유사들은 지난해 8월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피해를 입고 설비 보수에 나섰기 때문에 매년 2월 진행하던 정기보수가 올해엔 생략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동 산유국들이 아시아에 원유를 판매하는 판매가격(OSP)도 3년 만에 최고치로 높아졌다. 국제유가에 OSP를 더한 금액을 지불해야 원유를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사우디아라비아는 OSP를 배럴당 1달러 올려 1.7달러로 책정했고 아랍에미리트(UAE)는 0.28달러, 카타르는 5.65달러 등을 인상했다. 겨울이 된 아시아에서 수요가 늘어났다는 이유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도입하는 유가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국내 도입가가 더 높아지면 단기적으로는 재고평가이익을 누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높은 가격 탓에 수요 감소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휘발유, 경유 등의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면 승용차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비율이 늘어 제품 판매가 줄어드는 것. 이는 다시 정유사 마진인 정제마진을 줄어들게 만든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호조와 미국 한파 등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인상한 측면이 있고 국제유가 인상이 석유제품 수요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정제마진이 줄어들겠지만 큰 폭은 아닐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