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감사위원회가 지난해 다룬 1892건의 안건 중 '내부고발제도'나 '사이버보안 리스크'를 다룬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주주를 대신해 감시 책임을 짊어진 감사위원회가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삼정KPMG의 '감사위원회 저널'에 따르면 국내 기업 감사위원회는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하는 수준으로 회의 안건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감사위원회는 주로 재무감독(38.3%)과 내부감사 감독(17.7%), 외부감사인 감독(15.5%) 등 상법과 외감법으로 강제되는 사항들을 안건으로 다뤘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도 다르다. KPMG 인터내셔널이 글로벌 기업의 감사위원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및 심층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최근 3개년 동안 글로벌 기업의 감사위원회 주요 안건은 재무감독뿐만 아니라, CFO조직의 전문성 강화, 신규 회계기준 도입 대비, 사이버보안 리스크 대응 등을 다루고 있었다. 글로벌 기업의 감사위원회는 법에서 요구하는 사항 외에도 기업과 관련된 규제와 환경 등에 대한 다양한 안건을 논의했다.
국내 감사위원회에서는 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을 대비하기 위한 안건이 조사대상(1892건) 가운데 1건, BEPS(세원잠식 및 소득이전) 대응과 관련한 안건은 2건 이었다. 또, 핵심감사제 도입을 검토하거나 핵심감사항목을 선정하는 것 등의 안건도 17건으로 0.9%에 불과했다.
신경섭 삼정KPMG 감사부문 대표는 "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와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해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감사위원회가 글로벌 거시환경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다 능동적으로 감사위원회 안건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저널에는 국내 상장법인의 내부회계관리·운영조직 현황 실태도 담겼다.
외감법 전부개정에 따라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인증수준이 '검토'에서 '감사'로 상향되는 등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법제도적·전사회적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10곳 중 9곳은 내부회계관리·운용조직에 공인회계사가 부재한 것으로 조사돼 회계전문성이 상당히 우려되는 실정으로 나타났다.
외부감사인의 감사로의 인증수준 상향에 부합하도록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재설계하고 내부회계관리·운영조직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회계전문가를 통해 규정 준수와 실질적인 조직 운영을 점검해야 한다. 해외 선진국 사례의 경우, 사베인즈-옥슬리법(SOX) 도입 2년차에 새로운 기준에 대해 외부전문가(공인회계사)에 컨설팅을 받은 비율은 무려 83%에 이르렀다.
시장에서는 회계 투명성 확대를 위해 기업의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사 경영진으로부터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감사위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유경 삼정KPMG ACI 리더는 "내부회계관리·운영조직의 인력 규모가 충분한 것으로 보여도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운영과 감독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한계가 많다"며, "내부회계관리·운영조직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외부전문가(공인회계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