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의 돈줄을 묶는 새로운 총부채상환비율(DTI)이 1월 3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기존 DTI는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와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만 부채로 인식하지만, 신 DTI는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원금까지 부채로 잡는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은행 대출창구./사진=채신화기자
1월 31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A시중은행 대출창구. 대출을 담당하는 직원은 컴퓨터 모니터만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보다 자주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나른한 오후의 정적을 깰 뿐이다. 창구가 6개나 되는 다른 대형 시중은행 창구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다주택자의 대출을 대폭 조이는 신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시행 첫날 강남권 못지 않게 부동산 경기가 핫하다는 공덕동 일대 은행 창구는 대부분 한산했다. 대출신청은 물론 상담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본지 기자가 둘러본 마포구 용강동, 용산구 한남대로, 송파 지역 시중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기 전 미리 대출을 받은 데다 금융당국의 시중은행 대출 동향 점검,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수상한 자금'에 칼 빼든 국세청의 옥죄기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라는 게 시중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우리은행 송파구 A지점 관계자는 "기존에 담보대출 진행하던 고객들의 걱정이 컸다. 대출금액이 줄어드는 부분을 염려했다. 매매계약전에 영업점방문, 대출한도조회를 미리 꼭 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용산구 일대. 이곳에 있는 한 시중은행의 대출 담당자는 "대출 신청은 단 한 건이었다. 올 봄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가 집을 장만하기 위한 대출문의 였다"며 "달라진 내용을 묻는 전화가 평소보다 많다. 가끔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B은행의 대출 담당자는 "다주택자 같은 큰 손들이 많아야 은행도 남는 장사를 한다. 올 하반기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까지 도입되면 짐싸고 집에 가야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B은행에서 만난 박대출(가명·57)씨는 짜증섞인 목소리를 냈다.
"담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몇천만원이라니 말이 됩니까?" 아파트 2채를 보유한 그는 지난해 갭투자로 사들인 아파트 잔금 납부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으러 왔다가 생각했돈 만큼의 대출은 어렵다는 안내를 받았다. 새로 산 집은 서울시 마포구 A 아파트. 자영업자인 박 씨는 올해 초 만기가 돌아온 적금과 이 집을 담보로 잔금을 치르려 했지만,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에 발목이 잡혀 원하는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박 씨는 "대책이 발표된 건 알았지만, 연 소득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따지면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다고 봤다. 꼼꼼히 살피지 않은게 실수였다"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오후 2시 30분 용산구 한남대로 일대 부동산 중개사무소도 찾는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한남대로는 일대는 부촌이 많이 들어서 있어 다주택자들이 많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일부 중개업소는 아예 문을 닫고 겨울 휴가를 떠난 곳도 한두 곳 보였다. 당분간 손님들 발길이 끊길 것으로 판단해서다.
마포구 토정동 인근도 마찬가지다.
토정동의 부동산 중개업소 이모(43·여) 대표는 "여의도 생활권의 직장인들이 많다. 실수요자들은 괜찮겠지만, 기존 서 너 채씩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들은 몸을 잔뜩 낮춘 상태다"며 "매물도 줄어들고 시장에서는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신DTI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한 건 받으면 평균 DTI가 30%를 넘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보유자가 추가로 대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두 번째 주택담보대출은 만기도 15년까지만 적용된다. 대출 기한을 늘려 DTI를 낮추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예컨대 2억원을 금리 3.0%에 2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빌린 연봉 6천만원 대출자가 서울에서 또 집을 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신DTI 시행으로 대출 가능 금액이 1억8천만원에서 5천500만원으로 줄어든다. 올 하반기 도입되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은 다주택자들을 더 옥죌 전망이다. DSR는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소득과 비교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