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미국산 원유 도입량을 늘리고 있다. 사진은 바레인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시추기. /뉴시스
미국산 원유가 국내 정유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는 올해 1분기 중으로 300만 배럴의 미국산 원유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 정유업계에서 가장 많은 552만 배럴의 미국산 원유를 들여온데 이어 올해 수입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GS칼텍스도 올해 275만 배럴의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결정한데 이어 추가 수입을 검토 중이다. GS칼텍스는 2016년 국내 정유사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산 원유를 수입했고 지난해에도 481만 배럴을 도입했다. 지난해 미국산 원유 206만 배럴을 들여온 현대오일뱅크도 추가 수입을 위해 시장을 살피는 상황이다.
정유업계가 미국산 원유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국제유가가 지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년 전 50달러대에 머물던 국제유가는 최근 상승을 거듭해 배럴당 60달러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도입되는 원유의 대부분은 중동산인데, 중동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5.74달러다. 이에 더해 중동 산유국들은 아시아 지역에 원유를 판매할 때 '아시아 프리미엄'을 붙여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한다.
국내 정유업계도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지만 마땅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세계 각지에 다양한 유종이 있지만, 그 성분과 한국까지 들여오는 시간과 비용을 계산할 때 중동산 원유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의 두바이유 사용 비중은 에쓰오일 100%, SK이노베이션·현대오일뱅크 80%, GS칼텍스 70% 수준이다.
유종에 따라 특성이 다르기에 설비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도 국내 정유사들이 다양한 원유를 쓰지 못하게 만들었던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공정이라도 유종에 따라 나오는 제품의 양과 찌꺼기(파울링)가 달라진다"며 "유종에 따라 배관 사이즈와 압력을 다르게 구성해야 하기에 유종을 바꾸면 설비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가 최근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리는 것은 두바이유 가격이 지속 상승한 탓에 이러한 점을 감안해도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통상 두바이유는 미국산 원유(WTI)에 비해 배럴당 2~3달러 저렴했지만 현재는 1달러 가까이 비싼 상황이다.
더군다나 과거 미국산 원유는 미국 정부의 원유 수출 금지조치에 따라 수입이 불가능했지만 지난 2015년 금수조치가 해제되면서 수입이 가능해졌다. 남미를 돌고 태평양을 건너는 등 중동에 비해 운송비용이 늘어나지만 두바이유보다 고부가 제품 비중이 높기에 극복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두바이유에 대한 지나친 편중이 가격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린다는 문제의식도 반영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원유 의존도가 80% 가까운 상황에서는 중동에서 일방적으로 가격을 높여도 반발할 수 없다"며 "유종을 다변화하면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 있고 한 유종 가격이 오르더라도 저렴한 유종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24시간 글로벌 원유 시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외 지사를 구축한 상태다. SK에너지는 300여종의 유종 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원료를 찾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앞으로도 원유 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경제성이 확보된다면 지속적으로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GS칼텍스 관계자 역시 "경제성이 있다면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에쓰오일은 두바이유 의존도 100%를 유지할 전망이다. 모회사가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에는 아람코와 20년 원유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이와 관련해 에쓰오일 관계자는 "대규모 장기간 계약을 체결해 다른 회사에 비해 높은 할인율이 적용됐다"며 "도입 가격에서 다른 기업과 별다른 차이 없으면서도 안정적인 원유 수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