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며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이 자리가 7개월째 공석이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은 안전한 것일까.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중도 사퇴하고 이달로 약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공단 측은 기금이사추천위원회도 구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이사추천위 구성 이후 공모-심사-추천 등을 거쳐 국민연금 이사장이 임명한다.
이에 더해 엎친데 덮친격으로 현재 공단 현직 임원 중 반 이상이 임기가 종료되는 등 기금운용 의사결정 공백도 우려된다. 기금운용본부장의 공석이 장기화된 가운데 공단 임원까지 자리를 비우면서 일부 기금운용 수익률 하락에 따른 국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민연기금 적립금은 약 618조원에 달한다. 지난 1988년 국민들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지 올해로 30년 만에 이룬 성과다. 일본 공적연금(GPIF),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GPFG)에 이은 세계 3대 연기금으로 평가된다. 당장 4년 뒤에는 적립금이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금운용본부장, 204일째 공석
기금운용본부장은 618조원이라는 막대한 기금을 운용하는 중대한 자리지만 이날로 204일째 공석인 상황이다. 지난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이다. 강 전 기금운용본부장 외 다수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하차한 경우는 많았지만 이처럼 오래 자리를 비워두진 않았다. 길어야 2개월 안팎이었다.
시장에선 지난해 11월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취임 이후 기금운용본부장 역시 단시일 내 인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연금 불신, 정부 및 정치권의 입김, 운용 수익률 하락 시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쉽사리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앉으려는 인재를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권한과 책임이 막중한 자리"라며 "다만 역대 기금운용본부장들이 외압 논란에 시달리는 등 2년의 임기를 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난 '학습효과' 때문에 지원자가 딱히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장 올 하반기부터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의 주주활동을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연금 사회주의'가 강화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국민연기금 운용 관련 참견과 간섭이 극에 달할 것이란 설명이다.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다만 "정부가 (국민연금의)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기업을 통제한다는 것은 기우"라며 "이는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공단 측은 현재 기금운용본부장을 뽑을 계획은 없다고 한다. 김 이사장이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에 앞서 기금운용 관련 시스템 개편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600조원이 넘는 국민 자금을 운용하는 자리이니 만큼 도덕성 검증 등 철저한 자격 심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신임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에는 최소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금운용본부장은 조인식 해외증권실장이 대행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아무리 뛰어난 해외 인재를 데려온다고 해도 현재 한국 현실에선 제대로된 임무를 수행하기 힘들다"며 "기금 운용과 관련 시스템 개편 작업의 기본적 방향과 틀을 잡은 다음에 기금운용본부장을 인선하는 등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재를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공단 임원 70% 임기 만료
공단에 재직 중인 임원은 현재 김성주 이사장을 포함해 총 10명이다. 이 가운데 김 이사장과 김욱동 비상임이사, 장재혁 비상임이사 등을 제외한 7명의 임원은 모두 임기가 만료됐다. 공공기관 운영 법률에 따라 후임자 임명 전까진 전임자가 직무를 대신 수행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극적인 행동으로 국민연기금 운용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국민연금 임원은 임원추천위원회나 상임이사추천위원회 등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나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임명한다. 임추위 후 정식 임원이 되기까진 통상 최소 3개월이 소요됨에 따라 국민연금이 정상화되기까진 3개월 가량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즉 빨라도 5월 초에나 기금운용본부장과 임원이 선임될 것이란 관측이다. 적어도 6월 지방선거 전에는 채워지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국민연금이 위태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수익률 하락과 국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일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