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후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과 기준금리자료=메리츠종금증권
"현재의 금리 환경은 1994년과 닮았다. 저금리에 익숙해진 투자자들은 금리 상승(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국내 채권시장 한 CEO)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의 악몽이 재현될까.
13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미국채10년 금리는 2.8%대에 올랐다. 지난해 고점인 2.6%를 단숨에 갈아치우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잡음(noise)도 커졌다. 12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36.45포인트(1.39%) 오른 2656.00에 마감했다. 하지만 1월 말 고점 대비 10%가까운 조정을 받았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59.29달러를 기록하면서 60달러 아래에 머물고 있다.
덕분에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Massacre)'의 아픈 추억이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연준발 악몽이 재연될 것인가.
◆ 94년 악몽은 어떻게 탄생했나
미국 중앙은행(Fed)은 199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 동안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급격히 올린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때문이다. 90년대 초반 S&L(저축대부자조합) 파산으로 신용시장이 위축되고 경기침체가 온 이후 94년은 경기바닥을 다지고 확장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WEO)은 1994년부터 미국은 3%의 성장률 정상 국면에 진입 1995년부터 4%에 가까운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시장에서는 인플레기대와 과도한 레버리지(부동산)를 경계하며 미 연준에 선제적 통화정책 대응을 주문한다. 문제는 금리인상 속도였다. 당시 금리인상은 3.0%에서 6.0%로 300bp(1bp=0.01%포인트)였다. 94년 2월 첫 인상을 시작해서 1995년 2월까지 1년 동안 3번의 50bp와 1번의 75bp 인상으로 충격은 메가톤 급이었다.
이에 1993년 말 6%를 밑돌던 미국 국채 30년물의 금리는 1994년 말 8% 위로 치솟았다. 채권 가격이 폭락하자 1994년 10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채권시장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투자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1990년 시작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썼던 기준금리 3%(1992년 9월부터 1994년 2월까지)의 달콤함에 젖어 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S&P500은 94년 2월 482포인트를 기록한 후 4월 초 바닥인 439포인트까지 9% 조정을 받았다.
골드만삭스도 당시 큰 손실을 봤다.
유동성을 등에 업고 파티(89년 이후)를 즐기던 멕시코·아르헨티나 증시는 출구전략 이후 1년 만에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멕시코의 페소화 외환위기는 '데킬라 효과'로 남미 전역으로 퍼졌다. 데킬라 효과는 2년 뒤 아시아 국가의 외환위기로 연결됐다.
◆ 트럼프 재정정책에 더 주목해야
시장에서는 2004년과 더 닮았다는 평가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Fed 의장은 2004년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금리를 상당 기간 낮게 유지할 계획"이란 문구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사전 신호를 내보냈다. Fed는 이후 2년간 1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4.25% 포인트 인상했다.
공포가 지배하던 전 세계의 주가는 금리 인상 이후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했다. 미국·중국·유럽 등의 튼튼한 경제 체력도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주가(하락) 환율(급등)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고 말한다. 올해 미국의 긴축정책이 94년보다는 2004년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와 아시아 증시가 동반 폭락한 지난 5일 공식 취임한 제롬 파월(65)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제16대 의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정책의 투명성과 탄력성을 강조했다.
그는 Fed에서 취임 선서를 하며 "나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왜 하는지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강조하고 싶다"며 "우리 금융 시스템은 10년여 전 금융 위기가 시작되기 이전보다 훨씬 강하고 더욱 탄력 있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경기 회복세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점진적으로 금리(시장예상 최대 4차례)를 인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 윤여삼 연구원은 "현재 국면에서 연준은 여전히 중요한 기관이지만 당시와 같은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연준의 선택권은 올해 3번이냐 4번이냐 금리인상 강도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글로벌 유동성에 큰 충격을 주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트럼프 재정정책에 대한 걱정은 많다. 재정정책이 만든 경기개선과 채권공급 물량 부담이 현재 금리상승을 지지하고 있는 원동력이란 것. 2월 들어 내년까지 증액된 예산은 미국 채권공급 부담을 자극하고 있는데다 성장률은 추가 상향 조정 계기를 만들고 있다. 연준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속도를 내지 않더라도 부담스런 상황인 셈이다.
과도한 부채도 경계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글로벌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비금융 부채는 지난 2016년 135조 달러(15경 3225조 원)로,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235%에 달했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의 210%를 웃돈다.
IMF는 "낮은 차입 비용이 글로벌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낳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점차 높아지고 있는 부채비율은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적잖은 전문가들이 주식·채권 투자자에게 당분간 '방망이를 짧게 쥐라'(보수적 투자 태도를 가져라)고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