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관이 발행한 외화채권이 '품절남'으로 자리했다. 수요예측(기관투자자 사전청약) 때마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없어서 못 살 정도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의 금융리스크 등으로 다른 신흥국 시장은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차별화된 위상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은 지난달 23일 4억2500만 달러(약 4586억원) 규모 '포모사본드'를 발행했다.
포모사본드란 대만 채권시장에서 외국 기관이 대만달러가 아닌 통화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이번에 발행한 채권은 5년 만기로, 발행 금리는 3개월물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에 0.80%포인트(p)를 가산한 수준이다. 이는 국내 시중은행이 발행한 5년 만기 포모사본드 중 최저 가산금리이며, 발행금액도 시중은행 가운데 최대 수준이다.
첫 외화채 발행에 나선 한국타이어에는 3억달러 모집에 30억달러 이상 주문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제시한 금리는 미국 국채 5년물 금리에 135bp(1bp=0.01%포인트)를 가산한 수준이었으나 수요예측(북빌딩) 결과 112.5bp를 더하는 데서 정해졌다. 이는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의 스프레드다. 한국타이어는 이번 외화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테네시 공장 투자와 외화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예정이다.
한국남부발전은 올해 초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4억달러채를 발행했다. 북빌딩(수요예측) 결과 최종 유효 수요는 16억달러가 모였다.
대구은행의 5.5년물 3억달러 외화채 발행에도 8배 수준의 금액이 몰렸다. 금리는 최초 5년 만기 미국채 대비 155bp 높게 제시됐으나 최종 발행조건은 135bp를 더하는 데서 확정됐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84%, 16%의 투자가 들어왔다. 튼튼한 재무구조가 흥행의 비결로 전해진다.
수출입은행은 스위스프랑(CHF) 채권을 리오픈(Re-Open·증액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리오픈은 기존에 발행된 채권과 동일한 만기, 표면금리 조건에 시장가격을 적용해 채권을 추가로 발행해 기존 발행분과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 기준이 된 채권은 수출입은행이 지난 12일 발행한 3억 5000만 스위스프랑 채권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매우 견고하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국물은 해외 기관에게 포트폴리오상 신흥국 채권으로 분류되지만 신흥국 채권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채권으로 인정받고 있어 인기가 높다는 얘기다.
한국 국가 신용등급이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이 상승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신용등급을 'Aa2'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AA'로 두고 있다. 2007년 말과 비교하면 무디스와 S&P 모두 3단계를 올렸다. 피치는 1단계 올린 'AA-' 등급이다.
발행사들의 숨은 노력과 경험도 한국물의 몸값을 높이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국내 발행 기관들은 여러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 및 수요 예측을 통한 최초 제시 금리(Initial guidance) 설정으로 한국물의 가산금리(Spread)를 최소화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권도현 연구원은 "수급 여건과 통화정책 환경이 아시아 외화채 시장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미국의 금리 인상 과정에서 불확실성, 중국 금융불안 요인 및 미국 고용 개선 등으로 채권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