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에 '대공황'을 우려케 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시킨 무역 공방전이 다른 국가의 위협을 낳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유럽연합(EU)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발표한 철강, 알루미늄 관세 폭탄에 대항해 미국산 수입액의 보복 관세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유럽산 자동차에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맞불을 놓았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사실상 독일을 겨냥한 공격이다"고 분석했다.
무역전쟁은 '스몰 오픈 이코노미'(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경제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경제위기)'과 같은 존재다.
◆ 대공황 '블랙스완'은 올까
대공황을 걱정해야할 상황인가.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CNN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함으로 인해 일부 미국 철강업체들이 단기적으로 약간의 수혜를 입을 수 있겠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것"며 "우리는 과거에도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930년대 초반에 벌어진 세계 무역전쟁으로 경제공황이 촉발됐고 침체의 기간이 길어졌다"고 경고한다.
실제 1930년. 상무장관 출신인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그 해 6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관세를 대폭 올리는 '스무트-홀리법'에 서명했다. 미국 조치에 불만을 품은 교역 상대국들은 보복에 나섰고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1929년 1월에서 1933년 2월 사이 세계 교역량은 70% 가량이나 급감하고 말았다.
미국 의도와는 정반대로 1929년 5%에 불과했던 비농업부문 실업률이 1933년 35%까지 급등했다. 1929년 뉴욕증시 폭락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대응책은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와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때와 닮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1930년대 보다 더 않좋다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장기적 침체국면'(Secular Stagnation)에 빠져 있다는 것. 장기정체란 경기침체와 소득불평등 심화로 세계경제가 만성적 수요부진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모리스 옵스펠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카운슬러는 다보스 포럼 브리핑을 통해 "다음 경기침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와 있을 수 있다"며 "10년 전에 비해 대적할 무기들도 이제는 더 제한적인 실정이다"고 경고했다.
◆ 韓경제, '나쁜 샌드위치' 신세
최악의 시나리오 같은 일이 일어날까. 많은 전문가들은 "글쎄, 지켜보자…"라는 답변이다.
걱정은 이 모든 사건이 하필 한국을 둘러싼 주변 이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오랜 세월 구축된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간 동맹과 상호호혜적 자유무역 질서가 미국 대통령의 변덕으로 상처 입었다"면서 "제대로 대응해 이를 구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이들 국가 경제에 치명적이란 얘기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보호무역의 리스크가 아직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기아차 등 미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5개 수출업체의 매도를 권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나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일본 엔고(환율)와 거대 소비 시장인 중국 덕에 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착한 샌드위치에 있었다. 삼성전자는 소니 등 일본 전자업체들의 몰락과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세계 1위로 우뚝섰다. 현대자동차는 원화값 약세, 도요타 리콜 사태 등을 업고 시장점유율을 늘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경제 '빅3' 간 무역전쟁, 아베노믹스의 '위험한 도박' 등에 낀 나쁜 샌드위치가 됐다. 특히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함께 묶여 미국의 통상압박에 더욱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한미FTA 개정 압박 수위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 늘었지만 유독 미국 시장 수출만 10% 가량 감소했다.
IMF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 2% 초반으로, 2030년대에는 1%대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급속한 고령화와 서비스부문에서 뒤떨어지는 생산성, 노동과 생산시장 왜곡과 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으로, 사회보장제도 확대, 생산성 향상과 노동 시장 참여 확대를 위한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수석연구위원과 정성태 책임연구원은 '반세계화 시대의 세계화'라는 보고서에서 "앞으로 우리 경제와 기업활동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기업활동에 새로운 형태의 규제와 리스크(위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