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알 수 없는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남)은 우리 주면에 늘 있는 법이지."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사건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정부와 경제학자들의 자조 섞인 위로의 말이다.
지난 2008년이 그랬다.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시킨 미국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는다. 그 조짐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신용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주택 대출) 사태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미국은 나름대로 '별 것 아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너도 나도 산 주택 가격이 폭락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이 휴지 조각이 됐다.
그 여파는 세계 금융시장의 허브 월스트리트와 금융자본주의를 한순간에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1차 여진(2009년 2월 동유럽 금융위기), 2차 여진(2009년 11월 말 두바이 위기)에 이어, 이른바 3차 여진(2010년 2월)이 남유럽을 강타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체력을 놓고 보면 미국발 '무역전쟁'도 충분히 버텨낼 힘이 있어 보인다. 97년 외환위기, 2008년 리먼사태 등 위기 때마다 한국 경제는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블랙스완'.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유럽인들은 1697년 호주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를 처음 발견하기까지는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인식했다. 그때까지 인류에게 발견된 백조는 모두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발견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켜 '블랙스완'이라 부른다.
그래서 더 두렵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단순히 무역전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서다. 1930년의 대공황이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등과 같은 '퍼펙트 스톰(초대형 경제위기)'이 닥칠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혹시 모르는 '블랙스완'의 가능성을 모두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이 혹시 더 커질 수 있는 위기, 그리고 그 이후를 대비하는 길이라고 얘기한다.
◆ 위기에 강한 韓경제
현재의 무역전쟁의 전운이 단기에 끝날 지. 이제부터 시작인 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 어떤 경우이든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2008년의 위기 역시 한국을 '주요 20개국(G20)'의 모범생으로 만들었고, 한국기업과 산업이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토대를 만들었다.
"위기가 닥치면 더욱 강해지는 국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다시 이겨내고 도약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도약하는 한국경제에 투자해야 할 시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지난해 9월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칼라일 회장, 댄 퀘일 서버러스 회장, 스티븐 슈워츠만 블랙스톤 회장 등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 금융가 거물을 한데 불러모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위기에 강한 나라'를 역설하며 한국 투자론을 설파한 것도 이 같은 자신감 때문이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야'
시장에 알려진 철강(무역확장법 232조)과 세탁기(세이프가드) 이외에 미국이 노리는 산업은 다양하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큰 동시에 한국의 대미 흑자가 큰 산업 ▲한국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는 산업 ▲미국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기업 (예:월풀)이 존재하는 산업 등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세 가지 조건 중 2~3개를 충족하는 산업은 철강, IT, 산업기계, 화학, 섬유, 자동차 등이다.
특히 CEIC와 무역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자동차, 전자 (IT), 기계 부문에서 2015년부터 지난 3년간 전체 적자의 약 58%가 발생했다. 이들 한국제품에 대한 추가 무역 제재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반도체 제품의 일종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이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코트라(KOTRA)는 최근 발표한 '2017년 하반기 대(對)한국 수입규제 동향과 2018년 상반기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향후 수입규제 예상품목으로 자동차를 꼽았다.
이는 분쟁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엉뚱 결과를 낳을 수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예견해서 월스트리트의 현자라 불리는 나심 탈레브는 저서'블랙스완'에서 "전혀 발생할 것 같지 않았던 극단적 상황이 개인은 물론 기업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으며 21세기에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예측만큼 준비도 쉬운 일은 아니다. 위험에 대비해 들어가는 돈, 시간, 수고로움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수고로움이 손 놓고 있다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때론 '블랙스완'이 기회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휴대폰 제조회사 노키아의 몰락, 가전 왕국 일본 소니의 추락, 20세기 사진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코닥의 쇠망, 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부상 등은 세상의 변화, 넥스트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천용찬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정부 내 통상 전문인력을 늘려 기업의 무역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기업 자체적으로도 기술 수준을 높이고 현지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해 보호무역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