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 둥지를 튼 자동차 부품업체 B사는 요즘 미국 관련 뉴스에 자꾸 눈이 간다. 환율 걱정 때문이다. 이 회사의 영업담당 부사장은 "떨어지는 달러값을 보면 피가 마른다. 문제는 환율이 하루에도 최대 두자릿수까지 널 뛰다 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트럼프가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Beggar-My-Neighbour) 정책'을 꺼내 들까.
시장에서는 무역전쟁의 한 카드가 될 것으로 해석한다. 무역전쟁과 통화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어서다.
지난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약한 달러는 우리에게 무역과 기회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좋다. 장기적으로 달러의 힘은 미국 경제의 힘을 반영하고, 달러는 주요 준비통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며 통화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달러를 앞세워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유로존과 일본 중앙은행은 이미 긴축 선회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며 포스트 통화 전쟁을 우려한다.
◆ 통화전쟁 이미 시작…韓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도
시계를 1987년으로 돌려보자. 상상만 해도 끔찍한 환율 대란이 터졌던 시기다. 당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자 원화는 급격하게 절상돼 1987년 원·달러 환율은 연 평균 792.30원에서 2년후 679.60원으로 14% 하락(원화값 상승)한다. 저가에 의존하던 수출경쟁력은 큰 타격을 입게 돼 1988년 141억달러였던 경상수지 흑자는 1989년 3분의1 수준인 50억달러로 줄었다. 이 기간 대미무역도 약 30% 감소했다.
올해 수출기업의 가장 민감한 문제도 환율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연간 수출실적 50만달러 이상인 기업 51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출기업의 경영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이슈로 '환율 변동 심화'(48.4%)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글로벌 경쟁 심화'(25.1%), '미국·중국 등의 보호무역주의 강화'(16.0%) 등이 뒤를 이었다.
수출기업들은 보통 환율이 10% 하락하면 운송장비업의 영업이익률은 4%포인트, 전기전자산업은 3%포인트, 기계장비는 2.8%포인트 감소한다고 분석한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이 대부분 타격을 입는다는 의미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자동차업계 매출이 연간 4200억원 감소한다.
김건우 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연구원은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것에 대비해 장기적인 환리스크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동시에 기업들은 자체 환율 전문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응답 기업의 67.9%는 이미 환차손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기우일까.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와 달리 한국경제의 체질이 좋아졌고, 산업 경쟁력도 강화됐다는데 근거한다.
하지만 미국이 올해 우리나라에 대해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열려 있다. 미국 정부는 ①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 이상 ②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 ③중앙은행 외환 순매입액 2% 이상 등을 동시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작년 10월 ①·②번에 해당해 환율조작국보다 한 단계 낮은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2017년 대미 무역흑자가 179억7000만달러를 기록하며 첫번째 요건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국가로 의심받게 된다면 상황은 걷잡기 힘들다. 미국 재부무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내놓는다.
◆ 금리인상은 또다른 환율 압박카드
미국은 금리인상에도 자신감을 갖는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신임 의장은 지난달 27일 취임 후 첫 번째 청문회에 출석해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물가상승률이 Fed의 목표 수준인 2%까지 상승하고 있다"며 "기준금리의 점진적 인상이 목표 달성에 최선이라는 자신감을 준다"고 말했다.
금리를 올리면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탈동조화 양상을 보인다. 미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위험자산 선호 심리의 유지, 미국 재정확장에 따른 적자 심화 가능성 등과 함께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노선 등에 영향을 더 받고 있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부터 미국산 제품의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약 달러 옹호 발언을 해 왔다.
시장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부채 디플레이션을 걱정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셔(계량경제학의 창시자)는 1933년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개념을 통해 장기 경기 사이클에서 부채와 물가를 가장 경계해야 할 변수로 꼽았다. '호황 국면이 끝난 후 부채 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자산 가격 하락과 유동성 위축 등이 실물경제 침체와 물가 하락으로 퍼진다는 것.
이런 디플레이션에서 실질 채무는 불어나고, 채무자는 소비와 저축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실물경제 침체와 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는 게 부채 디플레이션의 요지다.
전문가들은 금리가 오르면 가계나 기업 모두 빚을 내고 싶어도 늘리기 어려운 처지에 내몰릴 수 있고, 이는 한국경제에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원화값 강세로 누릴 빚 부담 감소가 새로운 부채 리스크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와 정부, 비금융기업의 부채 비율은 2006년 183%에서 2016년 232%로 49%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주요 20개국(G20)의 부채 비율 평균은 210%에서 235%까지 25%포인트 상승했다.
기업들이 걱정하는 것은 '금리 상승→자금조달 위축(부채절벽)→투자감소→경쟁력 약화→재무리스크(부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한 터라 기업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도 긴축선회에 신중한 입장이다.
금리인상은 수출에도 부담이 된다. 원화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한국무역협회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기업 채무 상환부담을 증가시키고, 원화 절상을 가속할 수 있다"며 "자칫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