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생명과학과 영진약품이 합병을 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복인 KT&G 사장이 연임을 위해 자회사 간의 무리한 합병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합병 후유증으로 송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합병을 위한 기업가치 산정에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오는 16일 KT&G의 주주총회가 예정된 가운데 백 사장의 연임 안건을 놓고 주요 기관투자자 사이에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 자회사 관련 분식회계 감리에 이어 자회사 합병을 둘러싼 석연치 않은 의혹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아토피 치료제인 유토마의 품목허가가 취소되면서 판권을 사들였던 R&S바이오가 영진약품에 손해배상을 요구 중이다.
당초 이 계약은 KT&G생명과학이 체결했지만 영진약품에 흡수합병되면서 영진약품이 손배의무를 지게 됐다.
한 관계자는 "KT&G생명과학은 영진약품과의 합병을 계약한 이후 영진약품의 허가없이 판권계약을 맺었다"며 "이는 회사가치에 영향을 미칠 중대계약으로 합병철회 사유에 해당하지만 어떤 조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판권 계약금액은 14억원으로 KT&G생명과학 연간 매출액을 웃돈다. 영진의 허가없이 이뤄진 판권계약은 부메랑이 되어 현재 손해배상을 요구 중이다.
이에 대해 영진약품은 "합병과정에서 전용실시권을 통상실시권으로 전환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합병가치나 절차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KT&G 입장에서는 당시 KT&G생명과학의 처리가 시급했다는 분석이다. 무리한 합병 추진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KT&G생명과학은 전환우선주 투자자 등과 체결한 주주간 계약에 따라 2015년 말까지 기업공개(IPO)를 해야 했지만 무산됐고, 투자자들이 매도청구권을 행사하면 적자에 자본잠식 상태인 KT&G생명과학을 대신해 KT&G가 부담을 져야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백복인 사장이 이 합병을 지시하거나 최소한 깊숙히 관여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KT&G생명과학은 합병을 발표하면서 "투자자들과의 계약에 따라 IPO를 해야 했지만 경영성과와 이익규모에서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바이오벤처나 중소형제약사 등과의 합병을 고려했지만 계열회사와의 합병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해 영진약품과 합병을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합병 증권신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은 KT&G생명과학이 직접 또는 그가 지정하는 제3자를 통해 발행가액으로 매입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가지고 있다"며 "이번 합병이 무산되어 KT&G생명과학의 자본조달이 어려울 경우 KT&G는 대주주로서 매입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KT&G생명과학의 합병가치 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신약후보물질인 'KL1333' 역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KL1333'는 미토콘드리아 이상 질환 치료제로, 지난 2016년 1분기 전비임상독성시험 중 독성이 검출됐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다른 검사기관에서 재시험한 결과로 200억원이 넘는 가치평가를 내렸다. 식품의약안전처가 지난해 2월 의도적으로 보완된 임상독성시험 결과에 따라 'KL1333'의 임상을 승인한 부분도 논란거리다.
영진약품 측에서는 안전성을 실험하기 위해 약물의 용량에 따른 실험결과라고 해명했지만 제약업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독성이 검출되는 경우 개발은 중단되며 평가가치는 '제로(0)'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다른 임상 기관에 재의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작행위로 보고 있다.
한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신약후보물질 독성실험에서 독성이 나오면 그걸로 끝"이라며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용량을 조절해 임상 기관을 바꿔가면서 해서는 안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신약후보물질 등 KT&G생명과학에 대한 합병가치 논란이 커지면서 영진약품과의 합병은 증권신고서가 두 차례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반려됐고, 결국 사모방식으로 진행됐다.
KT&G 백 사장의 연임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자회사 관련 분식회계 감리에 자회사 합병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연임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의 2분의 1이 찬성해야 하고,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1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KT&G는 국민연금이 지분율 9.09%로 1대 주주, IBK기업은행이 6.93%로 2대 주주다. 여기에 외국인 지분율이 53.1%에 달한다.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은 적극 반대의사를 표했다.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외국인 표심은 지난주 금요일까지 의결권 위임이 3%도 안될 정도로 의사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의결권 자문기관마저 ISS는 찬성인 반면 글래스루이스는 반대를 표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 간에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찬성을, 서스틴베스트와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백 사장 연임에 반대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