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납품업체인 D사. 이 업체의 영업담당 부사장 A씨는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밉다. 한국산 세탁기,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셀(Cell·전지) 등에도 관세 폭탄을 부과하겠다는 위협 때문이다. 이 회사 매출의 60% 이상이 대기업에서 나온다. 그는 "대기업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영'을 하다보니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 수출물량이 줄면 치명적이다. 다른 해외기업과 거래를 뚫기도 쉽지 않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트럼프발 무역전쟁 우려가 커지면서 중소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이 보호무역의 희생이 된다면 협력사인 중소기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만 각각 220개, 2만9000여개에 달한다.
미국의 통상 압박은 철강뿐만 아니라 제약, TV, 자동차 등 다른 주요 산업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올 1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의 세탁기 제품만 타깃으로 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이달에는 미국으로 수입하는 모든 철강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세부 제재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제약업은 다음번 무역제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분야다.
직접적인 피해도 우려된다. 글로벌 교역 감소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을 감소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 좌불안석 中企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운 보호무역 앞에서 중소기업은 울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경험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중국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6%가 "사드 배치 발표 후 중국의 보호무역 조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사드 배치 발표 전 조사 결과(5.3%)보다 20.7%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중소기업의 걱정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가 있다. 글로벌 교역 감소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을 감소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또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비가격경쟁력이 약하며 특정 품목 및 지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교역요건이 악화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대기업 그늘에 있다보니 글로벌 무역전쟁의 부담도 크다. 삼성전자에 직접 납품하는 1차 협력사는 600여 곳에 달한다. 현대차의 1차 협력사는 400여개, 2·3차 협력사는 5000여개에 달한다.
철강, 전자와 달리 중소기업이 주축인 섬유·제지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산업용 섬유 수입액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무역 규제의 빌미가 될 우려가 있다. 미국 산업용 섬유 수입액은 2011년 104억 달러에서 2016년 125억달러 (연평균 +3.7%)로 증가했다. 다행히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는 생활용 섬유제품과는 연관성이 낮다는 분석도 있다.
무역전쟁의 또다른 사생아로 꼽히는 환율도 중소기업에 부담이다. 대부분 중기들이 지난 2008년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사태 이후 환헤지 상품이나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있어 환율 급락에 무방비 상태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른 무역전쟁이라는 불확실성까지 커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소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통계청과 관세청이 내놓은 '2016년 기준 기업특성별 무역통계'를 보면, 수출기업(9만3000개) 가운데 대기업(800개·0.8%)의 수출액이 3171억달러로 총수출액(4943억달러)의 64.2%를 차지했다. 중견기업(1700개) 수출액은 851억달러(17.2%), 중소기업(9만600개)은 921억달러(18.6%)다. 중소·중견 수출비중이 35.8%인 셈이다. 특히 수출 상위 10대 기업이 33.9%, 상위 100대 기업이 64.8%를 차지해 상위 기업 집중 현상이 뚜렷했다.
◆ 소통강화, 수출 품목·지역 다변화
어떻게 하면 걱정을 덜수 있을까.
중소기업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대 및 국내 중소기업 대응 방안'을 통해 정부는 단기적으로 정보수집 및 산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관련 지원을 확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을 통해 보호무역 체제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관세장벽에 대한 정보 수집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직접 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와 유관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시장의 단기 변동에도 대비해 자금이나 법률 등의 관련 지원을 강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기업은 단기적으로 불필요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중장기적으로 수출 품목 및 지역 다변화를 통해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완충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출선 다변화도 강조된다.
세종대 경영대학 김대종 교수는 "위기는 기회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의 교역이 축소 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오히려 교역을 확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중국에 대한 교역비중은 약 32%로 매우 높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0% 내외이다. 따라서 과도한 중국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 그 대안은 베트남, 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등으로 교역국을 다변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