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가끔 생각한다. 역사를 통해 세기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인물들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 만약 알렉산더대왕이 서른 초반의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나폴레옹이 워털루전투에서지지 않았더라면 세계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알렉산더대왕이나 나폴레옹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여러 해 동안 동로마 제국의 발칸 지방을 공포로 몰아넣은 훈족의 용맹한 지도자 아틸라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한 첫날 밤 죽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그 방향과 틀이 매우 달라져 있을 수 있었으리라. 지금에서는 이런 만약이라는 전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바꾸는 것은 반드시 하늘의 보이지 않는 의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기울일 수 있는 선한 의지와 믿음, 그러한 신념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준다면 역사는 분명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러기에 주역의 모든 괘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길흉을 예시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천지자연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안정과 평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주역이라는 역서가 존재하는 의미인 것이다. 조화와 균형을 갖출 수 있을 때야 만물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올 무술년에 걸어보는 기대다. 아무리 영웅호걸에 못지않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때가 돕지 않고 시절 인연이 맞지 않으면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가거나 아니면 역적의 이름을 들으며 구족이 멸문하는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전 세계의 역사를 둘러볼 때 흔히 보게 되는 경우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남이장군 역시 출중한 가문을 배경으로 능력과 기량 뛰어났지만 역시 하늘 아래 두 용이 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역적무리로 낙인이 찍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용쟁호투에 있어서도 역성혁명이 될지 반역하는 역적이 될지도 모두 운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 운기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하늘이 돕는 것이라 보기에 성공한 역모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오죽하면 진시황의 사후 혼란해진 천하를 평정할 것처럼 보였던 항우는 사면초가의 황망함을 겪은 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병사를 잘 쓰지 못한 죄가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항우의 한탄은 바로 하늘이 자신의 운을 돕지 않음을 탓한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자신의 힘과 기량만을 믿고 자만하여 덕으로 휘하를 다스리지 못한 것도 패인인 것을 후대의 사가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칼이 지혜로 대치되는 문(文)을 이길 수 없음이다./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