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수입 통화를 일치시키고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수출 품목은 원화 강세에 따라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국내 대기업 A사 관계자)
국내 수출기업은 무역전쟁에 원화까지 강세를 보이면서 주름살이 하나 더 늘었다. 원화 강세로 기대됐던 '낙수효과(내수 회복)'도 신통치 않다. 환율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와 수출기업에 직접적인 영항을 준다. 수출물량이 늘어도 환율이 하락하면 손에 쥐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자동차업계 매출이 연간 4200억원 감소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 반도체, 자동차, 선박 부담 커진다
원화강세는 한국경제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인 탓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 평균 관세율이 현재 4.8%에서 10%로 높아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기업의 가장 큰 걱정도 환율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연간 수출실적 50만달러 이상 기업 514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내년 수출기업의 경영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이슈로 '환율 변동 심화(48.4%)'를 꼽았다.
수출기업들은 보통 환율이 10% 하락하면 운송장비업의 영업이익률은 4%포인트, 전기전자산업은 3%포인트, 기계장비는 2.8%포인트 감소한다고 분석한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이 대부분 타격을 입는다는 의미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자동차업계 매출이 연간 42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 큰 우려는 한국과 수출경합도가 큰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와 비교해봐도 원화 강세는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국제무역연구원에서 내놓은 '미국수입시장에서의 한·일 및 한·중 수출경합도'에 따르면 2014년 한·일 경합도는 0.517을 기록하며 2010년 대비 0.08포인트 상승했다. 한·중 경합도는 0.346으로 같은 기간 0.06포인트 올랐다. 품목별로 한·일간은 자동차와 부품·기계류·의료정밀광학기기 등에서, 한·중간은 휴대전화와 부품·조선·전기전자제품 등에서 경합도가 높아졌다.
◆ 민생경제까지 온기 퍼지는 성장 모델 구축해야
선뜻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수 없는 게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경험적으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6년~1997년 사이에 외환당국은 외화부채의 원화가치를 낮추기 위해 비싸게 사들인 막대한 달러를 시장에 풀었다. 이는 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의 단초였다. 이명박 정부때도 한차례 환율 폭풍에 홍역을 치렀다.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때 내 걸었던 낙수효과는 없었던 셈이다. 일반 서민들은 물가 상승과 대기업 중심의 부의 편중, 확대되는 소득격차로 인해 오히려 심한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중소기업 또한 키코 사태로 인해 도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수석연구위원과 정성태 책임연구원은 '반세계화 시대의 세계화'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반세계화는 일시적 흐름이 아니라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우리 경제와 기업활동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기업활동에 새로운 형태의 규제와 리스크(위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 등 주요국 간 갈등 심화와 환율의 변동성 확대가 국제교역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매우 큰 충격을 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환율 세 자리 시대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않된다고 지적한다.
또 정부가 달러를 풀어 직접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금리·재정정책 등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며 환율 변동의 완급을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기업은 그동안 누렸던 고환율 정책의 단맛을 잊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품질과 서비스, 브랜드 등 경쟁력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것.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기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경제성장의 결실이 민생경제까지 파급할 수 있는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며 "고용,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큰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경제성장·국민 생활에 기반이 되는 보건·의료, 안전, 사회간접자본시설(SOC) 등에 대한 공공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