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오전 8시 4분 일어날 살인 사건의 '예정 범인'으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2054년 미국 워싱턴DC. 미 경찰 예방수사국 우발범행수사반 대원들이 아내의 불륜 현장을 지켜보던 남편을 예정 살인 혐의로 검거한다. 남성이 아내와 내연남을 죽일 것이라는 예지자(AI) 3명의 예언이 근거였다. 존 앤더슨 팀장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남성을 주저없이 결박할 수 있었던 건 예측 적중률이 '100%'라는 믿음 덕이다(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시작장면).
삼성증권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인공지능(AI) 서비스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부통제에서는 삼성에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속 "AI는 없다"는 결론이다.
삼성증권의 주식배당 오류가 발생했지만, 하루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채 '블랙아웃(blackout·대규모 정전)'상황에 놓였던 것. 그 틈을 타 주식 매도 금지 요청 뒤에도 몇 삼성 직원들은 주식을 대거 팔아 치워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
◆허술한 삼성증권, '관리의 삼성'은 없었다
지난 6일 오전 9시 30분. 삼성증권 배당 담당 직원은 주식배당을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사주 조합원인 직원 218명에게 현금 배당 28억1000만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전산입력 실수로 삼성증권 주식 28억1000만주를 입고시킨 것,
최종 결재자인 이 증권사 A팀장은 이를 확인도 안은 채 승인한다.
7일 오전 6시. 이른 아침이지만, 적잖은 삼성증권 직원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으로 출근해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일 없다"는 듯.
실제 삼성증권이 입력 오류를 자체 인지한 시각은 이날 오전 9시 31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는 오래지 않았다. 하지만 주문을 차단하는데 걸린 시간은 37분이 지난 10시 8분이 였다. 삼성증권 한 직원은 "초기 대응이 빨랐더라면…. 처음 겪는 일이라 모두 우왕좌왕하느라 진화가 늦어졌다"고 전한다.
엎지러진 물을 주워 담을 새도 없이 사고는 다른 곳에서 또 터졌다.
6일 이 증권사 직원 16명은 오전 9시 35분∼10시 5분 사이에 잘못 입고된 주식 중 501만주를 주식시장에서 매도했고 삼성증권 주가가 한때 전일 종가 대비 약 12%가량 급락(3만9800원→3만5150원)했다. 삼성증권을 믿고 투자한 적잖은 소액주들이 손해를 봐야 했다.
삼성증권은 오전 9시 39분에 직원에게 사고 사실을 전파한 뒤 오전 9시 45분에 착오 주식 매도금지를 공지하고 오전 10시 8분에 시스템상 전체 임직원 계좌에 대해 주문정지 조치했다.
하지만 삼성증권의 일부 직원은 회사의 경고메시지가 뜨고 매도금지 요청 뒤에도 잘못 입고된 주식을 "웬 떡이냐"며 주식시장에 내다 팔아치웠다. 금융사 직원이 절대 해서는 안될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벌인 것.
특히 주식을 매도한 직원 중에는 삼성증권의 애널리스트가 포함돼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투자자에게 시장과 기업들의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 올바른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런 애널리스트가 시장에 혼란을 주는 일에 가담한 것.
금감원은 아직 삼성증권의 매도금지 요청 후 주식을 내다 판 직원 수와 주식 규모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주식을 내다 판 직원 16명에 대해서는 이날 대기발령 조치했고 이후 감사를 통해 직원들에 대한 문책을 결정할 계획이다.
◆"팔자 말라"에도 팔았다
시장참여자들은 시스템 문제보다 신뢰가 무너진 데 대해 경악한다. 바로 삼성증권 직원을 '도덕적 해이'다.
삼성증권 일부 직원들은 주식이 잘못 입고됐으니 팔지 말라는 회사 측의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령주식'을 매도했다. 그리고 그 주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시장 교란 가능성을 너무나 잘 아는 증권사 직원들이라는 사실에 투자자들의 비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지난 6일 오전 9시 39분 증권관리팀장이 본사 부서에 배당 입력 오류 사고를 유선으로 알리고, 9시 45분 착오 주식 매도금지를 공지했다. 특히 9시 51분에는 사내망을 통해 '직원계좌 매도금지' 긴급 팝업 공지 후 5분 단위로 2차례 더 팝업창을 띄웠다. 전직원이 볼 수 있는 사내망 공지만 모두 3차례했다.
그러나 일부 문제의 직원들은 이를 무시한 채 당일 오전 10시 5분까지 약 26분 동안 주식을 팔아치웠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식을 매도한 직원 16명 중 경고 메시지 후에 매도한 직원은 현재 파악이 안 됐다"며 "회사 직원을 수사 의뢰할지에 대해 법률 검토는 아직 안 했고 회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손절매 등 동반 매도한 투자자들의 재산상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증권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약 12%가량 급락하면서 변동성완화장치(VI)가 수차례 발동됐다 이 때문에 매도에 나선 일반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관리의 삼성'도 다 옛 얘기인 것 같다. 조그만 증권사 직원도 안하는 짓을 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다시 한번 주식시장 전반에 대한 통제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