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손쉬운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기업대출 역시 담보나 부동산 대출에 쏠리면서 생산적인 자금 공급이란 역할은 크게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내놓은 분석자료의 첫 주제는 은행들의 대출 현황. 무리한 주담대 확대와 부동산대출 집중 등 큰 테두리에서 보면 지금의 가계부채 문제의 원인이 된 이른바 '약탈적 대출' 현황인 셈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감독·검사 시 은행의 생산적 자금공급 현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은행별 평가도 공개하겠다고 압박했다. 김 원장을 둘러싼 거취 논란이 길어지는 가운데 오히려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주담대↑ 생산적 기업대출↓ 신용대출↓
금융감독원이 15일 발표한 '은행의 생산적 자금공급 현황'에 따르면 국책은행(기업·산업·수출입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을 제외한 14개 은행(이하 일반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대출 대비 기업대출 비중은 2010년 말 48.8%에서 지난해 말 46.7%로 2.1%포인트 하락했다. 2013년 말 49.5%를 고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법인 기업대출 비중으로 보면 하락폭은 더 커진다. 2010년 말 34.3%에서 2017년 말 26.3%까지 8.0%포인트 낮아졌다.
기업대출 중 담보대출(보증대출 포함) 비중은 2010년 말 48.3%에서 2017년 말 65.2%로 16.9%포인트나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리스크 회피 경향이 심화된 탓이다.
담보대출 편중 현상은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 부문도 마찬가지다. 담보대출 비중은 중소기업이 2010년 말 54.1%에서 2017년 말 71.2%, 대기업이 2010년 말 20.6%에서 2017년 말 30.1%고 늘었다.
부동산업 대출은 급증했다. 기업대출 중 제조업 비중은 2010년 말 30.9%에서 2017년 말 29.4%로 1.5%포인트 하락했지만 부동산업이 포함된 서비스업의 비중은 2010년 말 이후 5.4%포인트 상승했다.
은행의 총대출 잔액 중 '생산적 대출' 비중은 지난해 2010년말 대비 6.9~9.0%포인트 하락했다.
금감원은 은행의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현황을 양적 측면 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까지 고려하기 위해 생산유발과 일자리창출, 신용대출 등에 가중치를 부여해 생산적대출 개념으로 환산해 분석했다.
그간 생산성이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적은 부동산 대출이 급증하면서 생산적 대출 비중의 하락은 기업대출 하락폭보다 3~4배에 달했다.
◆ "은행, 생산적 자금공급 늘려라"
김 원장은 취임 이후 첫 임원회의에서 금융감독 관련 분석자료와 통계 등을 외부에 공개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바로 은행들의 생산적 자금공급 현황이다.
금감원은 "모든 은행들이 '주담대 확대, 비생산적 기업대출 확대, 신용대출 축소' 등 유사한 여신정책·전략을 추구하면서 생산적 자금공급 역할이 저하됐다"며 "2014년 이후 기업구조조정 본격화와 가계대출 규제완화 등으로 은행들이 주담대 등 안전자산 위주로 여신정책을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은행은 가계·담보대출과 자영업대출(주로 부동산업) 등에만 집중했다고 지목했다.
실제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은행들의 주담대 증가율 평균은 66.5%지만 A은행과 B은행의 경우 증가율이 무려 439.2%, 35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한 은행의 경우 부동산업 대출 증가율이 195.3%로 은행 평균 107.7%의 두 배에 달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주담대, 부동산업 대출 등은 억제하고, 생산적 부분으로의 자금공급을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감독·검사 업무 수행 시 은행의 생산적 자금공급 현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하면 은행별 현황을 평가·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시장 자율적인 생산적 금융 활성화 노력을 적극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