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2400선 대에 안착했지만 한국증시가 여전히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의 실적 개선세가 해외 업체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현재도 대만, 인도, 아프리카 등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고 지적한다.
상장사 가치도 장부가치(book value)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의 1분기 실적이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외국인의 매수세가 살아난다면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미국의 금리인상이나 G2(미국·중국)의 무역 전쟁에 따른 파장 등이 변수다.
◆ 한국증시 아시아 증시보다 30% 저평가
16일 시장조사업체 IBES에 따르면 1년 후 추정 이익을 고려한 한국 증시의 현재 주가수익비율(PER)은 9.6배로 집계됐다.
과거 (2000년 이후) 평균 9.1배 보다는 높지만 정보기술(IT) 버블 붕괴(17.6배)와 서브프라임(13.4배) 시기보다 낮다.
국내 증시의 PER은 미국(17.0배) 캐나다(15.2배) 영국(13.8배) 일본(14.3배) 독일(15.8배) 등 선진국 시장은 물론 인도(18.1배) 대만(14.1배) 중국(12.3배) 홍콩(11.9배) 등 주요 이머징(신흥)시장보다도 낮다.
한국 증시는 선진국에 비해 약 36%, 아시아 평균에 비해선 30.43% 가량 할인돼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증시가 해외에 비해 밸류에이션(가치평가) 부담이 적은 것은 주가순자산비율(PBR) 전망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MSCI 기준으로 한국의 향후 1년간 PBR은 1.1배로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보다 낮다.
유독 한국증시가 저평가된 이유는 있다.
실적에 대한 우려가 발목을 잡는다.
실제 올해 이익성장률(EPS) 전망치는 12.85%로 선진국 13.80%, 신흥국 14.11%보다 낮다. 글로벌 무역전쟁에 따른 세계 경제 둔화와 경기 지표 등이 하락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을 2.8%로 유지했다. 이는 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망과 같은 수준으로, 정부·한국은행·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치(이상 3.0%)보다 낮다. 관세 전쟁에 따른 수출 둔화, 가계부채 구조조정과 소비 위축, 건설투자 침체, 3고(高)(고금리·고유가·원화가치 상승) 등 하방 리스크 요인이 성장률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한국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수출, 투자 부진이 우려된다"며 "소득주도 정책, 인위적인 고용 확대는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의 활력을 높일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도 둔화됐다. 전 세계 경기 회복세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실물지표 회복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미국의 경기 서프라이즈지수는 1월 초 80.7에서 하락해 3월 말 49.8, 현재 35.9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짐을 싸는 것도 이 이유다.
메리츠종금증권 정다이 연구원은 "한국의 이익수정비율이 개선세를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글로벌 안전자산선호심리 지속, 6월 MSCI 중국 A주 2.5% 편입을 앞두고 중국 외 신흥국 주식의 상대적 매력도 낮아질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외국인 수급이 국내 증시를 이끌어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 외국인 바라기의 한계(?)
한국 증시가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지는 외국인의 손에 달렸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국제금융협회(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에 따르면 지난 3월 신흥국시장에 순유입된 자금 규모는 76억달러로, 지난 2월의 순유출에서 순유입으로 전환했다. 지난 2월 당시 최근 14개월 연속 순유입 기록이 깨진 바 있다.
그러나 한국시장에서는 몸을 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이후 코스피 상승을 주도해왔던 것은 외국인 패시브 성격의 자금이었다. 외국인 순매수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구간, 가치주와 대형주의 상대 강도가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올 해 외국인 자금 중 상당액이 액티브 성격으로 알려졌다.
환율도 부담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지수의 상관관계는 -0.41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달러 약세, 원화 강세)할수록 코스피지수가 오른다는 얘기다. 상관관계는 -1에서 1까지 나타나는데 0에 가까울수록 관계가 없다. 2001년 이후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 1050원 이하에서는 순매도했다.
대신증권 박춘영 연구원은 "실적 개선에 기댄 외국인 매수를 예상했지만 환율 변화에 따라 실적 신뢰회복(이익수정비율 반등) 움직임이 다시금 약화될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출기업들의 2018년 사업계획상 평균 환율은 1090원이고 품목별 최저 환율인 생활용품(의료용품, 화장품 등)은 1076원이다"면서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50원선으로 이 보다 낮다. 수출기업들의 실적전망 하향조정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