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남북한 정보통신기술(ICT) 표준을 통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일 '봄이 온다' 공연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물꼬를 텄지만, 각종 통신 수단 통합과 기술교류 부재가 '디지털 통일'을 막는다는 설명이다.
◆분단이 남긴 통신제도의 간극
남북한은 컴퓨터 자판 체계부터 다르다. 한국 표준 자판은 'ㅂ ㅈ ㄷ ㄱ ㅅ' 순인 반면, 북한은 같은 자리에 'ㅂ ㅁ ㄷ ㄹ ㅎ'이 이어진다. 인터넷 주소도 판이하다. 한국 인터넷 주소는 'kr'로 끝나지만, 북한은 'kp'로 맺는다.
반면 전화 국번은 서울과 평양 모두 '02'를 사용한다. 평성은 경기도와 같은 '031'을 쓰고, 충청남도의 '041'은 북한 사리원에서 쓴다. 70년 넘는 분단이 보여주는 통신제도의 간극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컴오피스'와 북한의 '창덕워드프로세서' 호환 문제도 거론된다.
17일 남북표준기술을 20여년 간 연구해 온 최성 동북아공동체ICT포럼 학술위원장에 따르면 한국은 MS 워드 프로그램으로 북한의 창덕 문서를 읽을 수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창덕을 통해 한컴 문서를 읽을 수 없다. 0과 1의 배열 순서를 다루는 코드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5월 'ICT 교류에 의한 북한 인터넷 개방과 통일 재설계 연구'에서 "통신의 매체 사항들이 달라야 할 것은 같고, 같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너무 많다"며 "이 상태에서 통일이 되면 혼란만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2015년 '북한의 표준·규격화 체계와 향후 남북한 통합방안 연구(통합연구)'에서 "한글의 호환성 부족 문제는 인터넷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휴대폰을 비롯한 통신·방송 등 각 분야 통합에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위원장은 독일 통일 비용의 10%가 각종 기술표준 해결에 사용된 점을 볼 때, 한반도 표준통일 비용은 수백조원대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통일연구센터에 따르면, 1991년~2003년 독일 총 통일비용은 1조2800억 유로다.
한국과 북한은 컴퓨터 키보드 배열이 다르다. 한국 표준 자판은 'ㅂ ㅈ ㄷ ㄱ ㅅ' 순인 반면, 북한은 같은 자리에 'ㅂ ㅁ ㄷ ㄹ ㅎ'이 이어진다./최성 (사)동북아공동체ICT포럼 학술위원장 제공
◆디지털 TV 방식도 다르다
규모는 작지만, 북한도 모바일 시대를 열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북한 내 휴대폰 이용 현황'에 따르면 2017년 3월 북한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37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북한 인구(약 2500만명)의 15% 수준이다. 평양 내 보급률은 70% 전후에 달하지만, 평양 외 지역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최 교수는 "지난해 6월 30일 기준으로 474만여대인 북한 휴대전화 가운데 40%가 스마트폰"이라고 말했다.
코트라는 지난 1월 '북한 휴대폰 산업 발전 현황'에서 북한이 지난해 내놓은 스마트폰 '진달래3'가 외관상 애플의 아이폰(iPhone)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스마트폰은 외부 세계와의 자유로운 접촉이 불가능하고, 북한 당국의 주민 감시 수단으로도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다른 정치·경제체제 아래 정보통신 기술이 분화되면서 과제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독일은 통일 전 동서독이 TV 수상기 방식을 통일해 서로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고 최 위원장은 설명했다. 이는 통일을 위한 '문화 자본'으로 가능했다는 평가다. 현재 한국과 북한은 디지털TV 방송 방식도 다르다. 한국은 미국·캐나다·멕시코 등과 같은 ATSC 방식을 쓰는 반면, 북한은 DVB-T 방식을 사용한다.
중국과 대만은 한자의 로마자 표기법을 통일했다. 대만 국무원은 2008년 9월 기존 '통용병음'을 버리고 중화권 '한어병음' 표기법을 쓰는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한어병음은 우리의 로마자 표기법처럼, 중국의 여러 발음 체계를 하나로 정립한 것이다. 반면 한국과 북한은 1980년대부터 서로 다른 로마자표기법을 주장해, 하나의 국제표준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태블릿PC '삼지연'./최성 (사)동북아공동체ICT포럼 학술위원장 제공
◆통일비용 낮추고 '문화 자본' 늘려야
민간 주도 남북 표준 통일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남 교수에 따르면, 2000년 3월 중국에서 열린 '제38차 국제표준화기 문자코드위원회'에서 사상 최초로 남북 컴퓨터 전문가들이 한글 부호의 국제표준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북한 측은 글자 배열 순서 등을 한국이 북측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1999년에는 삼성전자가 북한의 조선콤퓨터쎈터와 문서 프로그램을 공동개발키로 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스마트폰 등 첨단 정보통신 기기가 신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표준 고립'이 향후 경제통합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위원장은 ICT 표준화를 위한 남북 협력방안으로 '상호표준인증'을 제시한다. 상호표준인증 방법은 ▲북한에서의 인증을 그대로 인정하거나 ▲기술전수와 인력교육을 통한 한국 인증 요구로 공동표준을 유도하고 ▲남북 상호 인증기구 성립과 활동을 합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도입을 위한 통신망 장비 지원과 망 연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인력 교육과 운영체계 지원이 필수다.
최 위원장은 "통일 비용 최소화를 위한 노력 중 하나가 점진적인 남북한 ICT 교류 협력"이라며 "일반인이 주로 사용하는 PC 운영체제와 키보드, 휴대전화 자판 등의 표준화와 행정 관련 코드 등도 점진적인 표준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ICT 기술표준은 통일 대비는 물론 국부 창출과 삶의 질 향상 등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