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의 발등에 불(자금 조달)이 떨어졌다. 5월에 9조3000억원 규모의 은행채 만기가 돌아 오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대신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영업에 나선데 따른 자금 수요도 있다.
시중은행들은 신(新) 총부채상환비율(DTI)·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등 신규 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여신이 줄자, 외부 수혈에 신중했었다.
29일 시중은행에 따르면 5월 은행채 만기는 약 9조3000억원 규모다. 6월까지 확대하면 국민은행이 1조4000억원의 만기를 앞두고 있고, 우리·하나·신한은행도 각각 1조2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특수은행도 5월에 산금채 3조3000억원, 수출입은행채 1조4000억원 등 5조9000억원 규모의 만기가 예정돼 있다.
시장에서는 은행들이 여건이 좋을 때 미리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본다.
최근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금리 역전'까지 감당하기는 부담이 크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쟁적으로 돈을 풀던 세계 주요국이 내년에 잇따라 '돈줄 죄기'에 나선 점도 부담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의 가산금리도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올해 발행이 늘고 있는 조건부자본증권(Tier1 코코본드)의 가산금리는 낮아졌으나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발행금리는 높아지는 추세다. 예를 들어 신한금융이 지난 4월 발행한 5년 콜옵션부 조건부자본증권의 발행금리는 4.08%였다. 이는 지난해 9월 3.77%에 비해 절대금리가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장 수요 증가로 가산금리는 지난해 9월 183bp(1bp=0.01%포인트)에서 올해 170bp로 낮아졌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으로 발행 확대 여건도 마련됐다. 금융지주회사의 코코본드 발행 근거를 명확하게 하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것.
코코본드란 발행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는 등 사유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상각되거나 발행 은행지주회사의 주식(보통주)으로 전환되는 사채를 뜻한다. 은행지주회사는 지금껏 코코본드 발행 근거가 금융지주회사법에 없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에 따라 코코본드를 발행해 왔다. 이 때문에 비상장 은행지주회사는 코코본드를 발행할 수 없었다. 또 은행지주회사는 건전성 규제인 바젤3 자본인정 요건에 맞는 코코본드도 발행하지 못했다.
6개(신한금융·KB금융·하나금융·농협금융·DGB금융·BNK금융) 금융지주는 연초 후 지난 13일까지 2조 40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지난해 발행액 5조4000억원의 45%에 달한다. 코코본드를 제외하더라도 2017년(5조1000억원) 발행규모의 32% 수준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차환과 자회사 자금지원에 필요한 자금을 금리 인상 이전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조달하기 위해 발행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 먹거리로 떠오른 중소기업 대출 수요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은행의 중소법인 대출은 348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5조6000억원(4.2%) 늘었다. 중소법인 대출은 2015년 말 320조4000억원에서 2016년 말 329조1000억원으로 8조7000억원(2.7%)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 4% 증가율을 나타냈고, 올해도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 기업대출이 부실화하면서 곤욕을 치렀던 은행들은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중소·벤처기업 대출에 소극적이었다. 대출 기준도 매출액 등과 같은 정량 평가 위주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문재인정부 들어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속속 도입된 데 따른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