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는 4월 초파일이 양력으로는 5월 22일이 된다. 필자가 주석하고 있는 월광사의 정기법회가 있는 매월 첫째 일요일 5월 6일에 올해의 봉축법요식을 함께 거행했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한 두 군데 이상의 절과 인연을 맺고 있다. 따라서 석가탄신일에 아침부터 이 절 저 절 인연 맺은 절집에 참배를 위해 뛰어다니는 신도들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어차피 부처님 안 계신 날이 어디 있던가? 따라서 신도 분들의 분주한 하루에 배려를 하여드리고 싶은 것이다. 여느 절집처럼 필자가 주석하고 있는 월광사에서도 2018년 초부터 이미 '연등 만들기'에 전력을 쏟았다. 기실 대부분의 크고 작은 사찰들에서는 음력 3월 초하루 기도를 마치고 나면 바로 연등접수를 시작하면서 바로 여러 종류의 연등을 제작하곤 한다. 준비된 연등 틀에 초록색 잎부터 밑동을 두 줄쯤 붙인 후 분홍색 또는 주황색 등 꽃잎을 붙여 올라가다보면 나름 소담스런 연꽃등이 완성된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연등이 소개되고 있는지라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다.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상으로 장엄된 연등은 물론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작고 아담한 등들까지 아름답기 그지없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연등을 만들려고 울력보시를 하는 신도들 덕택에 벌써 꽤 많은 연등이 달려져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희 심으로 벅차오른다. 필자는 근 십년 전부터는 연등을 달고자 하는 신도들이 되도록이면 직접 자신의 등을 만들어 달도록 했다. 한 잎 한 잎 마음속으로 간절한 발원을 담아 연등을 만들어 단다면 그 정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연등(燃燈)이란 말 그대로 '불을 밝힌다.' 무명(無明)을 밝힌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과 행동 속의 어리석음과 탐욕 성냄을 밝혀서 본래의 밝은 자리로 돌아가게 하려 함이다. 진흙물 속에서도 맑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연꽃의 향기와 거기에 더하여 어둠 가운데서도 빛나는 연등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피안의 행복으로 이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연등을 밝힐 때 우리 마음 속의 무명을 밝히는 신묘한 힘이 있다. 복덕 또한 쌓을 수 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대등을 달기도 하고 사정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형편에 맞추어 연등을 달지만 그 정성과 복덕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빈녀일등(貧女一燈)의 유래가 있듯이 말이다. 부처님 오신 좋은 날에 마음속에 항상 꺼지지 않는 진리와 복덕의 연등을 밝혀보시길 바래본다./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