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겠다면 얼마든지 빌려주겠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옛말이다."(외국계 금융기관 A대표)
한국기업과 금융사가 발행하는 해외 채권이 인기다. 없어서 못 살 정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남·북·미 긴장완화와 경제협력 기대감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빠르게 해소되고 있어서다.
21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은 해외채권 모집금액의 8배에 달하는 투자 수요를 확보했다. 이 회사가 지난달 31일 5년 만기 달러화 채권 3억 달러어치를 발행하기 위해 나선 수요예측에 아시아 및 유럽 기관투자가 165곳이 23억달러의 매수주문을 냈다. 매수주문의 83%는 아시아, 나머지 17%는 유럽과 중동 기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달 전 세계 투자자 대상으로 총 15억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이는 올 들어 수은이 처음 발행한 미 달러화 글로벌본드로 한국계 기관이 올해 발행한 외화채권 중 최대 규모다.
수은이 이날 발행한 글로벌본드는 만기 또는 금리조건(고정·변동)이 다른 2개의 채권을 동시에 발행하는 방식인 듀얼 트란쉐(Dual Tranche) 구조로, 3년 만기 변동금리 8억달러와 5년 만기 변동금리 7억달러로 이뤄졌다. 이번 채권 발행에는 총 168여개의 투자자가 26억달러 규모를 주문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수은 관계자는 "아르헨티나, 터키 등 신흥국 금융불안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한민국 신용부도스와프(CDS)가 하향 안정화돼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면서 "특히 이번 채권발행의 성공은 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KDB생명은 전 세계 투자자를 대상으로 2억달러(약 2140억원) 규모의 30년 만기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발행금리는 미국 국채 5년물 금리(2.84%)에 가산금리 4.66%포인트다.
한화생명은 4월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연 4.7%로 10억달러를 유치했다. 역대 국내 영구채(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채권으로 이자만 지급) 발행 규모로 따지면 우리은행이 2007년 10억달러를 발행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한화생명에 따르면 이번 신종자본증권 입찰에는 총 73개 기관이 참여해 1.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발행 예정 금액이었던 10억달러를 훌쩍 넘는 16억달러 규모의 수요가 몰렸다.
한화생명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국내 금융회사가 발행한 달러 표시 신종자본증권 중에선 가장 낮은 가산 금리로 발행된 것"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이 한화생명의 재무적 안정성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농협은행은 최근 5억달러 규모의 해외채권 발행을 위한 주관사 5곳을 선정, 자금 조달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KEB하나은행도 만기가 도래한 채권 상환 목적으로 3억달러 안팎의 해외채권을 하반기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매우 견고하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국물은 해외 기관에게 포트폴리오상 신흥국 채권으로 분류되지만 신흥국 채권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채권으로 인정받고 있어 인기가 높다는 얘기다.
한국 국가 신용등급은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이 상승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신용등급을 'Aa2'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AA'로 두고 있다. 2007년 말과 비교하면 무디스와 S&P 모두 3단계를 올렸다.
발행사들의 숨은 노력과 경험도 한국물의 몸값을 높이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국내 발행 기관들은 여러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 및 수요 예측을 통한 최초 제시 금리(Initial guidance) 설정으로 한국물의 가산금리(Spread)를 최소화하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도 외국인 투자를 이끌고 있다. 최남석 전북대 교수는 한반도 내 항구적 비핵화 조치가 마무리돼 향후 1∼2년 내 순조롭게 남북 경제통합이 이뤄질 경우 이후 5년간 연 평균 0.81%포인트의 추가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2020∼2024년 생산 유발액 42조3000억원, 부가가치 유발액 10조80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고 12만8000여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