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차 직장인 박모 씨는 요즘 퇴직연금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지난 2009년 가입한 확정기여형(DC)형 연금의 누적수익률이 5.7%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입만 하면 노후는 걱정이 없을 것이란 은행원의 말만 믿고 놔뒀던 게 잘못이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 5년차 직장인 김우울(30·가명)씨도 퇴직연금 명세서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몇해 전 연 4.8%로 가장 높은 금리를 준다는 금융인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밑고 가입했지만, 수익률은 곤두박질치고 있어서다.
근로자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연금 때문에 가입자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가입 의무화와 '100세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에 가입했지만 수익률은 기대에 못미치고 있어서다. 6월 말 현재 수익률은 1.26%(은행 DC상품 기준)에 머물고 있다. 2분기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5%였던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퇴금연금 운용사는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긴다. 은행이나 보험사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 깡통 퇴직연금 넣을수록 손해?
1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3개 시중은행의 2분기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1.26%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0.91%에 비해 뒷걸음질 했다. 물가상승률, 기회비용, 수수료 등을 따지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DC형은 회사가 납부할 부담금이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로 확정된 제도를 말한다. 회사는 퇴직연금 운용을 관리해주기로 계약을 맺은 금융기관(퇴직연금사업자)에 개설한 가입자의 개별 계좌에 부담금을 불입하고 가입자가 자기 책임 아래 적립금을 운용한다.
13개 시중은행의 비원리금보장형 상품은 깡통 수준이다. 6월 말 현재 수익률은 -0.40%로 부진하다. 노후는 커녕 당장 원금마저 날릴 위기에 처해 있는 것.
BNK경남은행의 비원리금보장상품은 -1.08%로 가장 부진하다. 부산은행의 상품도 -1.03%로 저조하다. 광주은행과 NH농협은행도 각각 -0.66%, -0.78%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그나마 원리금보장상품의 평균 수익률도 1.40%로 지난해 말 1.48%다 나빠졌다.
수익률은 깡통 수준이지만 은행들은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가고 있다. 가입자들이 지난해 이들에게 낸 DB형 퇴직연금의 평균 총비용부담률은 연간 0.52%였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12개 생명보험회사의 6월 말 기준 직전 1년 DC형 평균 수익률은 1.92%에 머물고 있다. 물가 등을 감안하면 투자자들이 느끼는 체감 수익률은 낮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은 2.16%에 불과하다. 이중 교보생명의 원리금보장형은 2%(1.94%)가 채 안된다.
이들 보험사의 비원리금보장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0.12%였다. 이 중 IBK연금의 수익률은 -8.15%까지 추락하면서 서민들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삼성생명(-0.34%), 흥국생명(-0.39%), 교보생명(-0.08%), 동양생명(-0.72%)등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한화손보 롯데손보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보 DB손해보험 등 6개 손보사의 3월 말 기준 DC형 평균 수익률은 2.13%였다.
확정급여(DB)형도 수익률은 신통치 않다. 13개 시중은행의 2분기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1.13%에 불과하다. 12개 생명보험회사의 6월 말 기준 평균 수익률은 1.67%로 전분기 2.65%에서 급격히 나빠졌다.
◆ 월 198만원 필요한데…퇴직연금은 벌써 마이너스(-)
불안한 노후를 퇴직연금에 맡겨야 하는 월급쟁이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직장인 이모(45)씨는 "당장 꺼내 쓸 돈이 아니기 때문에 퇴직연금 수익률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며 "수익률이 이렇게 낮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과연 최선의 노후 대비용 투자인지 앞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1953명(수도권 및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25∼74세 비은퇴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노후에 월 198만원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노후 대비로 저축하는 돈은 월 41만원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은퇴준비 수준은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및 개인연금과 함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3층 구조의 한 축이라 말한다. 이대로 가다간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DC형 가입자 비중은 2012년 34.7%에서 지난해 말 40.4%로 늘었다. 올 상반기(1∼6월) 적립금액도 DB형은 줄어든 반면 DC형은 2조원 가량 늘었다.
특히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가입자의 상품선택에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윤치선 연구위원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도 근로자의 퇴직급여가 감소할 수 있다"면서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하는 기업은 이를 미리 알려야 하고 DC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거나 중간정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