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 지 걱정이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부정적 관찰대상(watch list)으로 낙인 찍히면서 투자계획은 고사하고, 당장 운영자금 마져 빌릴 곳이 없다." 한 중견 기업 재무담당 임원 B씨의 하소연이다.
또 다른 A사는 올 상반기 차환용 회사채 발행을 타진하다 낭패를 봤다. 최근 국내 한 중소형 증권사와 주관계약을 체결했다가 한 달이 넘도록 인수단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해서다. 팔리지도 않을 물량을 떠안았다가 자칫 평가손실을 우려한 증권사들이 손사레를 쳤던 것. 이 회사 L 임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으로 겨우 위기를 넘겼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들이 경영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여전히 은행 대출 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과 회사채 등 자본시장(직접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은 여전히 낮았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부채중 장·단기 대출 및 회사채 잔액은 2분기 기준 1400조원 규모로 이중 회사채 잔액은 234조6000억원에 머물고 있다.
전체 부채잔액 대비 회사채 잔액 비중은 16.8% 수준에 그쳤다. 2013년 이후 최근까지 순발행액 규모가 예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대출시장의 저금리 기조 등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회사채 시장에서 찬밥 신세인 기업들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영구채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섰다. 실적과 재무 건전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약한 가운데 고금리 주식관련 사채로 급한 불을 끄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 구조조정 국면 심화로 기업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여전하다"면서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이를 인수할 만한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일정 가격에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워런트) 등을 얹어 투자자 찾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큰 기업들은 나은편이다. 중소기업들의 고민은 더 크다. '신용등급 하락→자금조달 금리 상승→투자 어려움→실적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모사채 시장에서도 찬밥신세다.
중소기업 한 재무담당최고책임자(CIO)는 "설비투자를 해야하는데 걱정이다. 기업어음(CP) 등 대체조달 수단을 모색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급전이라도 빌려써야 할 형편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은 대기업 등 우량기업에 편중돼 있다.
10월 기준 전체 발행규모 대비 A등급 이상의 회사채 발행액 비중은 97.4%에 달했다. 이 가운데 AA등급이 57.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기타사모 제외기준)했다. 같은 기간 한계기업으로 낙인 찍힌 BBB등급 이하의 발행비중은 2.6%로 신용등급 간 양극화가 여전했다.
올해 들어 회사채 신규 발행규모는 19일 현재 71조9000억원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2년(76조7000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순발행 규모도 18조8000억원에 달한다.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길도 어려워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상장사들은 기업공개나 유상증자 일정을 연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CJ CGV 베트남홀딩스와 드림텍, HDC아이서비스, 카카오게임즈, 프라코, 아시아신탁, SK루브리컨츠가 기업공개를 미뤘다. 이 중 SK루브리컨츠는 공모로 1조원 이상을 모을 걸로 예상됐었다.
한솔로지스틱스은 차입금 상환 및 물류 인프라 투자를 위해 지난 8월 유상증자로 134억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신주 발행가격이 1225원에서 930원으로 떨어지면서 조달금액도 102억원으로 줄어들었다.
한편 IBK경제연구소가 5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 464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2018 중소기업 금융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중 금융기관으로부터 신규로 조달한 자금의 원천별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은행이 65.2%로 절대 비중을 차지했고 ▲정책자금 16.6% ▲비은행금융기관 9.4% ▲사채 4.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주식·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은 0.9%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