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 회장은 한진칼의 17.8%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1대 주주다. /손진영 기자
최근 한진칼의 2대 주주로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가 등장하면서 1대 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와의 주주권 전쟁에 돌입했다.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이 3대 주주인 국민연금 손에 달린 만큼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스튜어드십코드를 행사할 것인가에 대해 이목이 쏠린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폭언 폭행, 배임 협의 등 한진그룹 오너십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주주 친화 정책과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KCGI가 특수목적회사(SPC)인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9.0%(532만2666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올랐다. 한진칼의 1대 주주는 조 회장 일가(28.95%)로 조 회장이 17.8%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특수관계인이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다.
KCGI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 1세대로 평가받는 강성부 대표가 올해 7월 설립한 사모펀드 운용사로 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등 주주가치를 내세운다.
KCGI는 "저평가된 한진그룹 계열사들은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 기회가 높다"며 지분 인수 배경을 밝혔다. KCGI는 한진칼의 경영권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나 주주서한이나 주주제안 등을 통해 주요주주로서의 감시,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3월에 있을 정기주주총회에서 한진칼 경영진과 KCGI의 지분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 이사진 7명 중 석태주 한진칼 대표이사, 조현덕 사외이사, 김종준 사외이사, 윤종호 상근감사의 임기가 내년 3월 17일 만료되는데 이사와 감사 선임을 놓고 표 대결이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진가를 향한 KCGI의 주주 친화 정책 및 지배구조 개선 요구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레 한진칼의 지분 8.35%를 소유하고 있는 3대 주주인 국민연금으로 옮겨가고 있다. 내년 3월 주주총회 때 국민연금이 어느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따라 한진칼의 운명이 결정된다.
KCGI가 목표하는 바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같다 보니 본격적인 주주권 활동을 위해 국민연금을 설득해 우호 지분으로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한진칼에서 의결권 대결이 이뤄질 경우 국민연금 등을 설득하는 것이 양측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지난 대한항공 대표 등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국가기관이 조사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결방안을 청취할 필요를 주장한 바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첫 스튜어드십코드 적용 대상이 한진칼이 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에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지난 7월 도입했지만 아직 적용한 적은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 과정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주주로서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도입됐다.
송치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는 그 특성상 국민연금 같은 주요 기관투자자의 지지를 얼마나 이끌어내는가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한진칼에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사안을 놓고 국민연금이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신호로 시장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