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분식 회계'를 둘러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금융당국의 법정 다툼에서 법원이 삼성바이오의 손을 먼저 들어줬다. 고의 분식회계를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며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에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삼성바이오는 대표이사 해임과 재무제표 재작성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다. 재판부가 금융당국의 결정에 반박 여지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삼성바이오가 준비 중인 본안 소송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회계처리 위법 단정할 수 없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22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시정 요구(재무제표 재작성), 과징금 80억원 부과 등, 삼성바이오에 내려진 제재는, 삼성바이오가 제기한 행정 소송의 결과가 나온 이후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이 중단된다.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가장 큰 이유는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할 당시 금융감독원조차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먼저 지적했다. 다수의 회계 전문가들 역시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하다고 판단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증선위와의 본안 소송을 통해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이런 상황에서 증선위의 제재가 가해질 경우 삼성바이오로서는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본안 소송에서 판단을 받기도 전에 특정 주주나 삼성바이오의 이익을 위해 4조원이 넘는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부패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기업 이미지와 신용이 심각히 훼손될 것"이라며 "대체 전문경영인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대표이사 해임이 이뤄질 경우 심각한 경영공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소액 주주와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재무제표 재작성이 있을 경우 기존의 회계정보를 신뢰하고 삼성바이오와 이해관계를 맺은 주주와 채권자, 고객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대여금을 회수, 또는 거래를 단절할 우려가 있다"며 "그로 인해 삼성바이오는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을 위험에 노출된다"고 판단했다.
■삼바, 본안 소송에서도 웃을까
행정처분과 압수수색으로 이중고를 겪던 삼성바이이오는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행정소송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삼성바이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용이 결정돼 다행이다"라며 "본안 소송에서도 회계처리의 정당성이 입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본안 소송으로 옮겨갔다. 이번 재판부의 결정으로 삼성바이오가 법적 공방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원이 "증선위 제재가 이루어지기 전에 본안 판결로 적법성을 먼저 판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고의 분식 회계이라는 결정에 반박 여지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증선위는 법원의 판결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는 입장이다.
증권위는 이날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과 관련해 "이번 법원 결정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본 후, 즉시항고 여부 등 향후 대응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와는 별도로 본안소송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