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12월24일)에 급락했던 다우지수 거래자는 이틀후 주식 거래 모니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상 처음으로 하루 만에 1000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 12월27일에도 지수는 장중 60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가 장 막판에 저점 매수를 노린 단타족이 대거 유입되면서 급반등했다.
주식시장의 일만도 아니다. 지난 1월3일 엔화 가치가 3.84%나 급등했다. 이날 엔화 환율이 달러당 장중 104엔대까지 내려갔다.
이러한 거래 움직임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프로그램 매매에 의한 비정상적인 변동이 일상화할 위험을 부각시킨다. 특히 전문가들은 AI의 발전은 알고리즘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람의 개입여지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른 알고리즘의 비직관성도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의 금융·자본시장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AI의 발달로 새로운 알고리즘 매매가 언제든 예고 없이 '플래시 크래시(금융상품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락하는 현상)' 현상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AI 진화가 화 키울수도…
25일 국제금융센터와 증권가에 따르면 2010년 5월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특별한 악재 없이 거래 종료 15분을 남기고 순식간에 998.5포인트(약 9%) 폭락했다.
이 때부터 '플래시 크래시'란 용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했다. 2010년 이후에도 미국의 주가는 수 차례(2015년 8월24일, 2018년 2월5일, 2018년 12월 26일) 플래시 크래시가 있었고, 미국 금리(2014년 10월15일), 스위스프랑(2015년 1월15일), 파운드(2016년 10월7일), 엔(2019년 1월3일) 등 다양한 시장 영역에서 출현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내 주식거래 중 알고리즘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60~80%로 추산한다.
JP모건은 전체 주식자산의 66%가 퀀트·패시브(ETF·인덱스펀드), 알고리즘 등에 의해 운용되고 있으며, 주식거래량의 10%만이 사람의 의사결정으로 이뤄진다고 봤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기 드 블로나이 주피터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이런 기계들은 실적이나 전망이 아니라 매일 생산되고 소음에 불과한 매우 세세한 자료를 근거로 단기적으로 움직이는 데 치중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외환시장도 알고리즘이 파고 든지 오래다. 전자중개회사인 전자외환거래(EBS)는 전체 거래의 70% 이상이 알고리즘 매매다. 특히 일본은 비은행권 전문 트레이딩 회사가 자체 개발한 다양한 알고리즘을 통해 주요 은행들과 함께 시장조성 역할을 한다.
채권시장은 장외거래 비중이 높아 알고리즘 매매에서 안전지대다. 다만 미국의 경우 회사채 시장에서 소액 채권을 중심으로 거래 플랫폼의 전산화, 자동화가 이뤄져 채권 프라이싱 차원에서 알고리즘이 성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사람이 배제된 투자 위험이다. 알고리즘 매매의 양적 확대와 함께 AI 와 접목해 알고리즘의 비직관성(blackbox-ness)이 커진데 따른 리스크다.
JP모간은 "주식시장의 위기는 알고리즘 매매, 패시브 전략, 퀀트 펀드 등 사람의 의사결정을 배제하는 투자방식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은 안전지대인가
한국은 '플래시 크래시'위험의 안전지대일까. 한국거래소는 2013년 10월 알고리즘 거래 계좌 사전 신고제를 도입했고 2014년 2월부터 일괄 취소할 수 있는 킬 스위치(kill switch)도 도입했다.
국제금융센터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물시장에서는 극히 제한적이다.
문제는 파생상품시장이다. 절반 가량이 알고리즘 매매로 알려졌다. 작년 한해 10조원인 넘는 자금이 순유입되며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순자산 총액은 전년보다 15.2% 증가한 41조원을 기록했다. 일평균 거래대금도 같은 기간 49.3% 늘어나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ETF는 지수 수익률을 추종하기 위해 묶음으로 자동 매매된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파생상품(선물·옵션)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11억5000만건과 9073조원을 기록하며 2013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해외 리스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해외 장내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2017년 기준 4510만 건으로 5년 전 1200만 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세계적인 리서치 업체 코히어런트 마켓 인사이트(Coherent Market Insights)는 향후에도 미국의 알고리즘 매매가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남겠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아시아로 꼽았다. 한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란 추측이 가능하다.
국제금융센터 최성락 연구원은 "일부에서는 딥러닝 단계의 AI가 설계한 알고리즘은 AI의 개발자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알고리즘이 일종의 블랙박스가 돼 의도치 않은 결과가 발생해도 즉각적인 디버깅(오류 수정)이 곤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알고리즘 매매의 보편화로 금융시장의 미시구조(microstructure)가 크게 변했다"면서 "시장 모니터링, 조사 분석, 예측, 투자, 정책수립 등 모든 측면에서 달라진 시장구조를 고려한 종합적인 접근방식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