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7일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독립운동 당시 태극기를 재현한 대형 태극기가 내걸렸다. /교보생명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가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신 회장의 조부 신예범, 백부 신용국, 선친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어서다.
27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신예범 선생은 일제 감정기 야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대산의 큰 형 신용국 선생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스무 살 때 3·1 만세운동에 뛰어든 뒤 호남 지방의 항일운동을 이끌다가 여러 차례 감옥에 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집에서 독학으로 초·중·고 과정을 마쳤던 대산은 천일독서를 통해 100권의 책을 정독하고, 시장 부두 관공서를 둘러보는 현장학습으로 세상을 조금씩 깨우쳤다.
스무 살에 중국으로 넘어온 대산은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나 도움을 주었지만 특히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던 이육사를 만나면서 국가와 민족에 눈을 떴다. 대산이 반드시 큰 사업가가 되어 독립운동자금을 내놓겠다고 하자 이육사는 "대사업가가 돼 헐벗은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자본가가 되길 바라네"라며 격려했다.
대산은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얻은 수익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대산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민족자본가로의 꿈을 키워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육보험 사업을 결심하고 교보생명을 설립했다.
1981년 6월 교보문고 개장기념식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맞이하고 있는 대산 신용호(왼쪽). /교보생명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창립이념에는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오랜 기간 고심했던 흔적이 담겨있다. 그의 창립철학은 교육보험, 교보문고, 교보교육재단,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국민교육진흥의 구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창재 회장은 2000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대대적인 변화혁신으로 국내 생보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관행으로부터 변신을 선도했지만 선대가 일궈놓은 창업정신 계승에는 더 적극적이었다.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의 현대적 재해석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체험중심·인성개발·지혜함양의 방법을 통해 참사람 육성을 표방한 '체·인·지 리더십 프로그램'은 국민교육진흥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한다.
연간 500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책방 교보문고는 한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이 꼭 거쳐 가는 대표적 명소이자 문화공간이 됐다. 대산문화재단의 해외번역·출판사업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1년부터 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온 광화문글판은 교보생명의 브랜드를 한 차원 높인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판의 문안선정 작업은 이제 회사가 아닌 시민들을 대표하는 위원들에게 맡겨져 시민들이 주인이 됐다.
한편 신 회장은 대산 신용호 창업주가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데 이어 22년만인 2018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