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두 번째 만남이 베트남 하노이(2월 27~28일)에서 '빈손회담'으로 끝난 가운데, 국제사회의 시선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향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은 물론, 작년 6월 싱가포르 센토사에서 열린 회담까지 북미간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이다.
실제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하노이회담이 빈손으로 귀결된 날 춘추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문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감이 더 커졌다.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론을 부각시킨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당장의 관심사는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라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상황이 급변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은 그동안 빛을 발휘했다.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던 전 정권과 달리, 문 대통령은 특유의 중재자 외교로 북한과 함께 '9·19 군사합의(남북간 접경지역 군사적 충돌 방지)'를 이뤄냈다. 이 합의는 작년 9월19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일환이다. 이 합의에는 비무장지대(DMZ)의 비무장화 및 서해 평화수역 조성, 군사당국자회담 정례화 등이 명시됐다. 뿐만 아니라 4·27남북정상회담(1차)-5·26남북정상회담(2차)-9·18~20남북정상회담(3차) 등 3차례 정상회담을 김 위원장과 함께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그래선지 미국 외신 뉴욕타임스는 작년 4월26일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은 스스로 '중재자(mediator)'로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핵 협상 경험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국제무대 경험이 전무한 김 위원장 사이를 오가며 양쪽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문 대통령이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음은 국내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도 나온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논평을 통해 "2차 북미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며 "이제 문재인 정부가 창의적인 노력을 시작할 때다. 북미간 합의를 촉진하고, 북미간-남북간 신뢰를 유지하는 역할이 요긴한 상황이 됐다. 정부는 제3차 북미회담 성공을 위해 지금부터 당장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달 말 하노이회담이 빈손으로 귀결되자 문 대통령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향후 북미회담 후속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날 밤 6시50분부터 25분간 통화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김 위원장과의 회담 결과를 문 대통령과 가장 먼저 공유하고 의견을 구하고 싶었다"고 말한 후 회담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때 "지구상 마지막 남은 한반도 냉전을 종식하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역사적 과업의 달성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의지와 결단을 기대한다"며 "우리도(문재인 정부도) 한미간 긴밀한 공조 아래 필요한 역할과 지원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북미 정상은 하노이회담 때 비핵화 조치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간 인식 차가 컸던 것이다. 이번 회담이 결렬된 원인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로 돌아와 정상회담 합의문 불발 관련 "영변 핵시설 해체로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제재완화를 요구했으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