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올해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쇄신'을 통해 대대적인 변화에 나선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주부터 포스코와 기아자동차,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주총이 시작된다.
올해 주총은 기업마다 쇄신을 통한 혁신과 투명 경영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과 기업 경영진의 방어전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오는 20일 주총을 개최하고 소액주주의 주주권 보장에 집중한다. 지난해 5월 주식을 액면분할한 이후 열리는 첫 주총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주총 일정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3월 마지막 주의 전주 금요일에 주총을 열어왔지만 올해는 주총이 몰리는 금요일을 피해 수요일로 날짜를 잡았다.
이번 주총에서 삼성전자는 김한조 하나금융 나눔재단 이사장과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를 새 사외이사로 추천한다. 당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다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주총 안건에서 제외됐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의 임기 만료 전 임시 주총을 열어 재선임 여부를 다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 이른 15일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연다.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을 비롯해 정관 개정 승인,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이다.
LG전자는 구본준 LG 부회장이 맡았던 기타 비상무이사직에 권영수 ㈜LG 부회장을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이는 구광모 체제가 들어선 뒤 구 부회장이 작년 말 공식 퇴진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권 부회장은 구 부회장과 하현회 부회장이 맡았던 주력 계열사 중 일부에서 이사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새롭게 선임하기로 했다. 기존 정도현 사내이사와 김대형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는 안건도 상정했다. 감사위원으로는 백용호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를 신규 선임하고 기존 김대형 감사위원을 재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이로써 총 7명인 LG전자의 이사회는 조성진·정도현 사내이사와 권영수 기타 비상무이사, 김대형·백용호·이상구·최준근 사외이사 체제가 될 예정이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오는 27일 열리는 주총에서 이사회가 이사 중 한 명을 의장으로 정하도록 수정한 정관변경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도록 한 기존 SK㈜ 정관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분리해 이사회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관 변경안이 주총을 통과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사회를 거쳐 SK㈜ 이사회 의장 직에서 물러난다.
현대차는 오는 22일 서초구 양재동 본사 서관 2층 대강당에서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날 현대차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한 뒤, 이후 열리는 별도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날 현대모비스도 같은 절차를 밟아 정 수석부회장의 대표이사 선임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기아차는 오는 15일 열리는 주총에서 현재 '비상무이사'인 정 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로써 지난해 9월 그룹 수석부회장에 오른 지 반년 만에 핵심 계열사의 이사회 주요 직책을 모두 맡아 '책임 경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번 주총은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시대'를 대외에 천명하는 자리인 셈이다.
포스코는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며 대대적인 변화에 나선다. 포스코는 오는 15일 주총에서 장인화 철강부문장과 정중선 전략기획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고 김학동 생산본부장과 정탁 마케팅본부장을 신규선임할 방침이다. 기존 사내이사였던 오인환 사장과 유성 부사장은 1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이에 따라 포스코 사내이사진은 지난해에 이어 5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이를 통해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취임과 함께 100대 개혁 과제로 내걸었던 '현장 밀착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학동 생산본부장은 포항제철소장과 광양제철소장을 두루 역임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 정탁 마케팅본부장도 포스코 에너지조선마케팅실장과 철강사업전략실장 등을 두루 거친 마케팅 전문가다.
이들을 통해 생산과 마케팅 등 현장경영에 보다 집중,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글로벌 공급과잉 등 철강업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침이다.
대표이사 체제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 장인화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올해 장인화 사장은 철강 부문에 집중하고, 최정우 회장은 회사 전체를 아우르면서 에너지·소재 및 신성장 부문에 집중하는 구도가 예상된다.
최 회장이 '부문별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부사장을 대표이사진에 추가로 선임해 3인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사외이사진에는 박희재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 정문기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 등 3명이 신규 임명된다.
반면 한진그룹과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주주 행동주의 투자자와 대기업 오너 경영진 간의 대결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최대 관심 기업은 한진칼·한진·대한항공이다. 한진 그룹은 총수 일가 갑질 논란 속 행동주의 펀드 KCGI의 주주 운동 도전을 받고 있다. KCGI는 한진칼 이사회에 감사·이사 선임 및 이사 보수 한도 제한 등의 안건을 제안했으며, 한진그룹 회장인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의 이사 연임도 반대하고 있다. KCGI 측은 한진칼 지분을 12.01%, 한진 지분을 10.17%까지 늘린 데 이어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 차명 소유(3.8%)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양사 대결의 열쇠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2대 주주(지분율 11.56%)이자 한진칼의 3대 주주(지분 7.34%)로,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정관 변경안을 제시, 한진 일가를 압박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각종 갑질과 불·편법 행위로 논란을 일으킨 만큼 연임에 대한 여론은 싸늘한 상황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의 주주권 행사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역시 주요 관심 기업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지분 3% 보유)와 현대모비스(2.6%)에 총 8조3000억 원에 달하는 배당을 요구하고 있으며 각각 3명과 2명의 사외이사 선임안을 제시한 상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이사회가 엘리엇의 배당 요구 및 사외이사 선임 주주제안을 반대하고 있어, 향후 표 대결이 예상된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50%에 육박하는 외국인 주주 구성과 국민연금(현대차 8.7%, 현대모비스 9.5%)의 지분 보유로 인해 현대차그룹과 엘리엇 간의 대결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 기업 주총 일정
▲ 15일: LG전자, LG화학, 포스코, 기아차, 신세계, 효성 등 99개사
▲ 20일: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27개사
▲ 21일: 삼성생명, SK이노베이션 등 102개사
▲ 22일: 현대차, 현대모비스, SK하이닉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한국전력, 네이버 등 313개사
▲ 25일: SK케미칼 등 138개사
▲ 26일: LG, SK텔레콤, 현대중공업,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등 207개사
▲ 27일: 대한항공, 한진, SK, 신한금융지주, 현대중공업지주, 한화 등 239개사
▲ 28일: 에쓰오일 등 120개사
▲ 29일: 아시아나항공, 엔씨소프트 등 307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