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손해의 대소
인생이 피곤한 이유는 타고난 복덕이 옅거나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한 경우 주변에 힘든 인연이 있거나 등 여러 요인이 있다. 오늘은 너무 머리를 굴리다보니 오히려 자기 스스로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H여인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인생은 사실 선택의 연속이다. 길이 하나라면 오히려 고민이 적을 텐데 두 가지 이상의 경우의 수가 있게 되면 고민이 안 될 수 없는 게 인생지사다. 그러나 두 가지를 다 택할 수는 없으니 어느 떡이 더 큰지 어느 길이 더 가성비가 좋을 지를 고려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쁘다고 할 일 도 없는 것이며 인생사를 살아나가면서 우리는 무수히 경험하게 될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H여인의 피곤한 삶은 바로 여기서 부터이다. 손해가 될 부분의 크기가 작거나 아니면 효용이 조금이라도 더 큰 결정을 하면 될 터인데 그녀는 습관적으로 놓쳐야 할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과 불평을 쏟아내곤 한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곧 이순(耳順)이 다가옴에도 가질 수 있는 효용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조금의 손실에 마음을 볶으면서 끌탕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답답한 마음이 올라오곤 한다. 자신은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이리 저리 고민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녀는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는 것이다. H여인 역시 문제의 본질은 손해를 본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손해를 되뇌며 자신을 볶는 것이다. 사실 잘 따져보면 손해도 아닌 것을 말이다. 예를 들면 주식을 손절매했다고 가정해보자. 더 큰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줄이기 위해 손절매를 한 것인데 그 손절매 자체를 되뇌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만약 본전에 팔았다하더라도 본전 이상의 이익을 못낸 것을 가지고 괴로워할 것이 분명하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것은 이익이나 손해의 대소일 것이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나름대로는 최선의 결정을 한 것이라 보면 될 것을 되뇌이고 곱씹으며 스트레스라는 부정적 부산물을 더 만들어낼 뿐 아니라 본인이 감당하기 힘드니 주변 사람들한테까지도 전염을 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