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시민들이 20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된 조선 후기 별서정원인 성락원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3일 약 200년 만에 문을 연 국가지정 문화재 성락원(명승 제35호)이 국민 세금으로 복원 중임에도 고가의 입장료를 책정, 일부 시민에게만 유료·제한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시에 따르면 성락원에는 2000년대 중반 약 21억원, 2017년 2억원, 2018~2019년 25억원 등 약 50억원의 국·시비가 투입됐다. 문화재 복원에 세금이 투입된 만큼 시민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선택적 개방이 아닌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 후기 별서(별장)정원인 성락원은 철종(1834-1863)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정원으로 사용되다가 의친왕 이강이 넘겨받아 35년간 별궁으로 이용됐다. 해방 후 심상응의 5대손인 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매입,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이라는 뜻을 담아 '성락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1991년부터는 심 회장의 며느리인 정미숙 씨가 관장으로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이 관리해오고 있다.
시와 문화재청, 가구박물관은 23일 시민에게 서울의 전통정원을 널리 알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오는 6월 11일까지 성락원을 임시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주 3회 그룹당 20명씩 사전 신청을 받았고, 현재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시민 서모(27) 씨는 "개인 소유지를 세금을 들여 복원해줬으면 시민을 위해 완전 개방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홈페이지는 내내 접속 불가더니 6월까지 마감이 완료됐다고 하더라. 입장료도 만원이나 받던데 대체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 지 궁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국가지정 문화재면 개인소유라 하더라도 문화재 복원 시 정부에서 70%, 시에서 30% 지원해준다. 국가의 예산이 들어간 만큼 전면 공개를 조건으로 문화재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돈만 지원해주고 있다"며 "문화재보호법에도 가능하면 공개하라고 나와 있지만 강제가 아니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이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재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재 원형 보존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전부 지울 수 없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개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인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소유주가 원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적으로 개방하라고 명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개인 소유의 문화재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충주시의 대표적인 공원이자 국가지정 명승 제42호인 탄금대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정부와 충북도, 충주시는 국비 95억9500만원을 포함, 도비와 시비 등 총 331억9000만원을 투입해 탄금대 명승지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손경수 충주시의회 의원은 제229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시는 2018년 2년치 임대료인 2억3000만원을 탄금대 소유자에게 지급했지만 (소유자의) 관리는 미흡하다"며 "임대료를 내면서 권리행사를 제대로 못 할 바에는 적극적으로 매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4년 국가지정 명승 제42호로 지정된 탄금대는 안동 김씨 종중의 땅으로 현재는 그 후손들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충주시는 이들에게 탄금대 공원 사용료로 연간 1억1500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손 의원은 "탄금대는 국가의 소유도, 시의 소유도 아닌 사유지"라며 "탄금대에 수백억원을 들여 명승지 사업을 추진하면 나중에 국가나 지자체의 매입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양주시는 민간이 소유하고 있던 문화유산인 궁집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해당 소유주와 매입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궁집은 조선 영조가 막내 딸 화길 옹주를 위해 지은 집이다. 시민에게 개방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개인 사유지라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남양주시는 내년 말까지 93억원을 들여 토지와 건물을 매입, 궁집을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활용할 예정이다.
성락원 매입과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돼야 결정할 수 있다"며 "종합정비계획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시에서 성락원을 매입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타당성 여부가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