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013년까지 133조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경영권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재계가 4차산업혁명을 대비해 연구 개발(R&D)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 투자 비중은 줄이고 있어 경기 부양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와 지나친 규제, 반기업 정서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CEO스코어 등에 따르면 500대 기업 중 R&D 비용을 공시한 214개사는 지난해 49조8837억원을 투자했다. 전년보다 8.3%나 늘어난 숫자다. 매출액 비중도 2.93%로 0.1% 포인트 상승했다.
바이오와 IT 부문이 가장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매출액 대비 비중은 셀트리온(29.42%)이 가장 높았고, 네이버(24.16%), 넷마블(20.43%), 한미약품(18.99%), 엔씨소프트(16.02%)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도 7.66%로 16위에 올랐다. 금액으로는 18조6620억원으로 가장 많다. 그 밖에도 대부분 제약사와 IT 업종이 순위권을 차지했다.
재계는 산업계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요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R&D 투자는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글로벌 수준을 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실업률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실업률은 4.4%로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률도 60.8%로 전년비 0.1% 포인트 떨어졌다.
SK동남아투자법인 박원철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빈그룹 응웬 비엣 꽝 부회장 겸 CEO(다섯번째)가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SK
주요원인은 제조업 감소와 건설 경기 침체 등이 꼽힌다. 제조업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부동산 침체로 주택 투자도 크게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투자가 얼어붙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34조7087억원에 불과했다. 전분기보다 10.8%나 줄었다.
실제로 재계는 올 들어 해외 투자에 안간힘을 쏟는 분위기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제조공장을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했다. SPC도 중국에 최대규 모 빵공장을 짓고 있다. 서울반도체 등 중견기업도 공장 해외 이전을 진행 중이다.
국내 투자가 위축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규제가 꼽히고 있다. 카카오 등 업체가 야심차게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표류 중인 카풀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가상화폐를 이용해 환전 수수료를 줄여주는 서비스 '모인'도 규제망에 걸렸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하면서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4달여 동안 혜택을 받은 사업을 손에 꼽을 정도다.
급격하게 높아진 최저임금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기 활성화에 앞서 최저임금만 매년 10% 이상 오르면서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GDP 대비 최저임금은 OECD 국가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알려졌다.
주요 기업들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회적 역할을 이행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다. 삼성전자가 10년여간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 투자를, SK하이닉스가 경기도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도 국내에서 4년간 화학분야에 3조7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재계가 투자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끊임없이 재계를 공격하며 경영권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올해 스튜어드십 코드로 오너 일가를 매섭게 공격했던 한진그룹의 경우 조양호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오너 부재와 경영권 분쟁이란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게 됐다. 국정농단 사태 최종심이 임박한 데다, 정계가 이를 정쟁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재계를 불안에 떨게 하는 요소다.
재계 관계자는 "규제가 많은 데다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성도 떨어진 국내에서 투자를 하고 사업을 확장하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한다"며 "정부와 여당이 재계를 향한 적대적 태도를 이어가는만큼, 투자 심리도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