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 산업의 기반인 철강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철강 산업은 자동차·조선·기계·건설 등 다양한 산업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핵심이어서 '산업의 쌀'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기간산업이다.
하지만 최근 환경단체와 지방자치단체의 제동으로 철강산업이 '조업중단'의 위기를 맞았다. 환경부를 비롯해 충남도, 경북도, 전남도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포스코 광양·포항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 대해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예고한 것.
환경단체는 철강업계가 대기오염 물질 저감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채 고로 블리더(고로 내부에 공기를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안전밸브장치)를 통해 불법으로 배출했다며 대기환경보건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자 지자체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며 '조업중단'이라는 초강력 결정을 내렸다.
◆갈피 못잡는 정부 규제에 산업계 타격
환경단체와 지자체의 반발로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업계가 '조업중단'의 상황에 처했지만 이후 해결 방안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고로 정비 과정에서 발생한 수증기·가스를 고로 블리더로 무단 배출했다는 이유인데 현재 업계 내에는 이를 대체할 설비가 없다. 현재 상황에서는 '조업 중단' 이후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로 정비를 위해 블리더 개방은 불가피한 상황인데 관련 법령 등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아 업계의 피해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오염 배출량과 위해성 측정을 위한 조사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달 드론을 통해 블리더 개방에 따른 배출가스 수준을 한 차례 조사한 게 끝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지방자치단체 등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가 뒤늦게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산업부는 철강업계의 애로사항을 공감하고 있지만, 환경부와 지자체는 환경문제를 야기한 만큼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또 지자체별로 규제 처분을 내리는 과정도 상이하다. 전남도와 경북도는 청문회를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행정처분 결정을 내리기로 했지만, 충남도는 이같은 과정조차 없이 행정처분을 강행했다. '조업 중단'은 법률 위반사항이어서 청문회 과정이 필요없다는 것이 충남도의 입장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로 정비 간에 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폭발사고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세계적으로 이 공정에 저감장치를 설치한 선례가 없다"며 "시민단체의 주장에서 시작된 대안없는 규제로 업계를 압박하면서 뚜렷한 해결방법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업 중단 10일?'…복구 최대 6개월
행정당국의 조업 정지 10일에 대해 철강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철업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철강협회가 지난 6일 성명서를 통해 "조업정지 10일은 곧 제철소 운영 중단을 의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철강협회는 '고로(용광로) 조업정지 처분 관련 설명자료'를 내고 '산업의 쌀'인 철강의 생산이 멈추면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철강을 사용하는 수요산업과 관련 업체들이 매우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며 행정처분 반대입장을 밝혔다.
고로는 쇳물을 생산하는 시설로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15~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쇳물을 생산한다. 조업정지 기간이 4~5일을 초과하면 고로 안에 있는 쇳물이 굳어 고로 본체가 균열될 수 있다. 이 경우 재가동와 정상조업을 위해서는 최소 3개월, 경우에 따라 6개월 이상 소요된다.
만약 조업정지 10일이 적용될 경우 수개월 이상 조업이 중단될 수 있다. 실제 고로 1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약 120만t의 제품감산이 발생해 8000여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한국철강협회는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블리더 개방 외에는 기술적 대안이 없다"며 "조업정지는 곧 제철소 운영 중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철강생산 과정의 첫 단계인 고로 조업은 높이 110m의 거대한 고로 상단에 철광석과 유연탄을 투입하고 아래쪽에서 고온·고압의 바람(1200℃)을 불어넣어 쇳물을 만든다. 1500℃의 쇳물을 다루는 고로 특성상 안전성 확보를 위해 연간 6~8회 정기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정비 시 고온·고압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멈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로 내부 압력이 외부 대기 압력보다 낮아지면 외부 공기가 고로 내부로 유입돼 내부 가스와 만나 폭발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로 내부에 스팀(수증기)을 주입해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하고, 이 때 주입된 스팀과 잔류가스의 안전한 배출을 위해 고로 상단에 있는 블리더를 개방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블리더를 통해 배출되는 잔류가스는 2000㏄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시 10여 일간 배출하는 양에 해당되는 정도다. 이 잔류가스의 성분은 현재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측정이 진행 중"이라며 "특히 미세먼지(PM10),일산화탄소(CO), 황산화물(SO2), 질산화물(NO2)등 주요 항목이 용광로의 정상 가동시와 휴풍일 때 대기질 농도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휴풍에 의한 주변지역의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도는 최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 대한 합동점검을 실시하고 10일 조업정지를 확정했다. 전남도는 오는 1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행정처분 청문회를 열고 최종 결정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