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세종연구원, 세종포럼 공동주최
예술의전당 인문아카데미 전원경 박사 특강
"예술, 여행을 떠나다 : 파리"
세종대학교와 세종연구원이 공동으로 지난 13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예술의전당 인문아카데미 전원경 박사를 초청해 '예술, 여행을 떠나다 : 파리'를 주제로 세종포럼을 개최했다. /세종대학교
세종대학교(총장 배덕효)와 세종연구원(이사장 이요섭)이 공동으로 지난 13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예술의전당 인문아카데미 전원경 박사를 초청해 '예술, 여행을 떠나다 : 파리'를 주제로 세종포럼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에서 전원경 박사는 "파리는 유럽을 찾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도시다. 이 도시에 쌓인 숱한 역사와 문화예술의 유산들은 파리를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로 만들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파리가 이처럼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는 나폴레옹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군대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공화주의자인 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혜성처럼 등장했으며, 1793년 툴롱을 공격한 나폴리군을 저지하기 위해 나폴레옹 준장은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폴레옹은 군인이었지 정치가는 아니었으며, 이 후 거듭된 승리로 인해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전 박사는 "스스로를 '나폴레옹 1세'로 칭한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로마 황제의 현신으로 여기며, 로마 제국의 부흥을 꿈꾸었다. 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주변국가들을 차례로 침략해서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지를 프랑스 제국에 편입시키고 자신의 형제들을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할양해 준 나라들에서는 곧 반란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폴레옹 몰락의 시발점이 된 것은 대륙봉쇄령의 한계, 그리고 1812년의 무리한 러시아 원정이었다. 1812년 러시아원정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제국을 지키는 조건으로 프랑스 황제 자리에서 퇴위한다. 자신의 운명을 건 1815년의 워털루 전투의 패배 후 나폴레옹은 영국군에 체포되어 아프리카 한가운데의 고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 보내진다. 이 섬에는 그는 7년을 버티다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전 박사는 "1839년 나폴레옹의 유해는 세인트헬레나에서 파리로 옮겨졌다. 그의 유해는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한 자신의 개선문을 지나 앵발리드에 안치되었다. 1806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해 건축되기 시작한 이 개선문은 당초 로마에 있는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모방한 것이다. 자신이 로마 황제의 후손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던 나폴레옹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오늘날 나폴레옹의 개선문은 파리의 중심부에서 당당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며 "파리의 중심에 거대한 나폴레옹의 기념비가 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