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은행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3일 "현재 실물경제 상황 등을 보면 생각보다 회복이 느릴 것으로 보인다. 물가도 상반기 0.6%로 굉장히 낮아 그것도 걱정이다. 적절한 정책을 적절한 타이밍에 잘 해야겠다"고 말했다.
고승범 위원은 한은 금통위원 중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분류되지만 올해 들어 수출, 투자, 물가 등 경제지표가 계속 악화되면서 금융안정만 생각할 수 없다는 그의 고민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고 위원은 금융안정을 전제한 통화정책을 주장한 만큼 사실상 7월 금리인하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고 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 "통화정책은 어느 한쪽만을 고려해 결정할 수 없으며 실물경제 상황과 금융안정 상황에 대해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고려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화정책 수립과정에서 금융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거시경제정책인 통화정책이 경기와 물가 상황을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며 "물가안정 목표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안정도 고려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위원은 매파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7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통화정책 수립 시 기본적으로 경기, 물가 등 거시경제 상황을 바탕으로 판단하지만 금융안정 이슈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금융안정을 더욱 중시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 같은 해 10월 이일형 위원과 함께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소수의견을 냈었다.
그런 그가 최근 저물가, 저성장 상황에서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가능한한 실물경제와 금융안정 대응을 고민하면서 결정해 나가겠다"며 복잡한 속내를 보였다.
고 위원은 "정부도 하반기 경제 전망을 낮췄고, 수출과 설비투자는 안 좋다. 게다가 경제성장률이 낮아 수요 측면의 물가 하방 압력이 있고, 물가를 계속 2% 목표로 가도록 해도 되나 하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 위원은 여전히 금융안정을 강조했다.
고 위원은 "금융발전으로 여겨졌던 과도한 신용공급은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일 수 있고 금융안정도 해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며 "통화정책 수립 시에도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위기 후 금융안정을 '비만'에 비유하며 "비만은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가계부채 관리도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여부에 있어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지닌 고 위원이 금융안정을 강조하면서도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금융안정만을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면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최근 조동철 위원을 비롯해 신인석 위원이 사실상 금리인하를 주장한 가운데 이주열 총재도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금리인하는 시기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 위원은 기준금리 향방과 관련해 "올해 하반기와 내년 경제 성장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미 연준(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미·중 무역분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잘 보고 판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