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 후 30여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사라졌고, 계열사들은 각자 생존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돌입했다. 다른 그룹사들이 앞다퉈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메트로신문은 삼성그룹 해체 후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 글로벌 위기에 빠진 삼성 계열사들 실태와 전망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b]
"완전 남이다. 예전에는 삼성 '전자'와 '후자'로 나뉜다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농담도 무의미해졌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최근 삼성전자와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계열사들은 2017년부터 각자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경영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이 사라지면서 공식 직함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으로 바꿨다. 최근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사옥을 방문하는 등 계열사 경영도 지원했지만, 계열사들을 통합 관리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글로벌 최고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액이 2016년 202조원에서 2017년 240조원, 2018년 244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브랜드 가치도 70조원을 눈앞에 두며 일본 도요타 등을 제치기도 했다.
반면 비전자 계열사는 실적 악화에 허덕이고 있다. 삼성물산이 2분기에도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고, 삼성생명도 2017년 이후 매년 10% 이상 매출액이 줄어들며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증권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계열사에 투자하는 삼성그룹펀드도 대부분 손실을 기록 중이다.
미래 동력도 '개점 휴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가 대표적이다. 삼성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바이오 산업을 선점하고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지만, 각종 수사와 압박 속에 좀처럼 성과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 수출 규제 사태는 삼성그룹의 위기를 더욱 부각시켰다. 이재용 부회장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가동이 선언됐음에도 각자 경영 체제로 계열사들이 힘을 합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물산은 일찌감치 반도체 소재를 유통하고 관련 합작사에 투자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삼성전자와 공동 전선을 꾸리지는 못했다. 일본이 금융 제재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지만,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도 조용한 모습이다.
삼성전자 계열사간 소통길도 막혔다. 사업지원TF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다. 검찰이 TF 소속 주요 임원들을 잇따라 소환하면서 비상사태에도 발빠른 대응에 어려움이 크다고 전해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홀로 광폭 행보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삼성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가 없는 만큼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추스리고 방안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이례적으로 전자계열사 사장단과 꾸준히 회의를 갖고 있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지만, 사업지원TF 공백을 직접 메꾸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는 사실상 국내 경제 핵심인 삼성을 정조준한 것"이라며 "하지만 삼성은 그룹 공동 대응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도 버거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